'휙... 땅, 휙... 땅' 연신 방망이질로 운동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경기도 안양시 석수체육공원 인조 잔디 야구장. 덕 아웃에 서있는 60대의 다부진 체격의 충훈고 야구부 감독은 취재진을 만나자 손에 쥔 편지 한 통을 건넨다. "야구는 제 인생입니다. 명예라도... 어쨌든 내 탓 이죠"라고 긴 한 숨을 내쉬었다.
편지의 분량은 A4 한 쪽. 건넨 편지엔 감독과의 재계약을 않겠다는 '근로계약 만료 통지서'가 적혀 있다. 이 같은 통보를 받은 감독은 전 MBC 청룡 원년 멤버로 LG 트윈스 2군 감독을 지냈고 현역 선수 시절 ‘악바리’, ‘탱크’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쫓아다닌 김인식.
프로야구 역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그가 고교 야구부 감독에서 돌연 쫓기듯 해임됐다. 그러나 김 감독 '해임 안'을 놓고 충훈고 안팎에선 "학교장과 예체능 부장의 '밀실야합'에 따른 희생양"이라는 여론이 거세다.
16일 다수의 관계자 등에 따르면 안양시 충훈고는 지난 9월 30일자로 계약기간 만료를 알리는 ‘근로계약 만료 통지서’를 앞서 지난 8월 21일 김 감독에게 통보했다.
이는 재계약을 않겠다는 사실상 일방적 해직 통보나 다름없다.
학교 측은 잇따른 '직무 태만', '음성적 경비 각출' 등 다수의 민원 발생을 거론하면서 김 감독을 전격 해임시켰다.
그러나 김 감독 '해임 안'을 둘러싸고 안양시 야구협회 측은 "이건 '음모'고 부당 해고"라며 강력 비난했다.
이 같은 근거로 '근로계약 만료 통지서'가 작성된 일자는 지난 8월 21일. 이 시기는 최종 결재권자인 A교장의 해외 출장 기간이다. 이 틈을 이용해 예체능 부장 B씨는 A교장 없이 제멋대로 '근로계약 만료 통지서'를 작성했다는 것. 그렇다보니 이는 '공문서 위조'에 해당된다는 게 협회 측 주장이다.
한 관계자는 "B씨가 '김 감독이 순순히 사임하지 않아 자신이 임의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고 귀띔했다.
더욱이 감독 '해임 안'을 놓고 지난 9월13일 충훈고 체육소위원회가 열렸지만 김 감독의 소명 기회는 묵살됐다.
결국 학교 측과 B씨가 김 감독 자신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마저 앗아가 버린 것이다.
특히 B씨가 소위원회가 열리기 수 일 전 한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께서 체육소위원회 위원이시니 저를 만나 (김 감독 해임)싸인을 해주셔야 겠습니다"라고 종용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데 김 감독의 해임 통보는 지난 8월 21일. 해임 절차를 밟는 체육소위원회는 지난 9월13일로 절차와 결과가 뒤바꼈다. 그렇다보니 억지로 꿰맞추기 위한 소위원회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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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 아니라 지난 10월1일 작성한 A교장과 김 감독 간 '근로계약서' 제8조 재계약 사항에 '학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계약기간을 조정할 수 있다'라는 규정의 문구를 끼워 넣었다. 이는 규정도 없는 내용을 적시한 것으로 근로기준법에 정면 배치된다.
그렇다보니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 해임 할 수 있다'는 사실상의 '노예 계약서'라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자 협회 측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지난 12일 부당 해고를 반박하는 내용증명서를 학교 측에 전달하는 등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A교장과 B씨의 '공문서 위조' 등에 관한 진위여부를 놓고 경기도 교육청 감사와 경찰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협회 측은 "학교 측이 주장하는 해직 사유는 근거 없는 거짓이고 김 감독을 끌어내기 위한 모함에 불과하다”면서 “학교 측은 김 감독의 부당 해고를 즉각 철회하고 더 이상 학교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B씨는 "절차상 문제는 없다. 교장 부재시 교감이 최종 결정권자로 나설 수 있다. 또 김 감독의 해임 사유는 확인된 사항"이라며 "현재 해당 기관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그는 또 "문제의 ‘근로계약서’는 경기도 교육청 지침에 따라 작성된 것이고 '계약 만료 통지서'는 말 그대로 해임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소위원회는 그 이후에 이뤄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