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팬으로 시작한 한글자막 제작, 집단고소라니…"

"미드 팬으로 시작한 한글자막 제작, 집단고소라니…"

신희은 기자, 김유진
2014.07.02 05:43

[미드 자막집단, 그들만의 세계 上]들썩이는 미드 마니아들

[편집자주] '워너 브라더스''20세기 폭스' 등 미국 유명 드라마 제작사들이 자사의 드라마 한글 자막을 불법으로 제작해 배포한 네티즌들을 고소했다. 미드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활동해온 네티즌들은 혼돈에 빠졌다.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미드의 전성기'를 이끌어왔는데 고소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불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미드 자막 제작자 집단의 과거와 현재를 둘러보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진단해본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수사물 드라마 'CSI'의 한 장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수사물 드라마 'CSI'의 한 장면.

'CSI', '왕좌의 게임', '워킹데드', '하우스오브카드', '덱스터'

서울의 한 명문대에 재학 중인 최모씨(23)는 '미드(미국드라마)' 마니아다. 완성도 높은 스토리에 박진감 넘치는 빠른 전개, 개성 있는 출연진까지 오래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최씨는 특히 대학 1학년 때부터 '수사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CSI'에 푹 빠졌다. 라스베이거스, 뉴욕, 마이애미 등 미국 유명 도시를 배경으로 한 CSI시리즈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방송을 통해 국내 방영되기도 했다.

◇10여명이 분업…美방영 후 2~3일이면 한글자막

최씨는 매주 TV로 방영되던 CSI를 기다리지 않고 인터넷으로 한글자막이 있는 영상을 바로 다운받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운로드 과정에서 알게 된 CSI 드라마 팬 카페에도 가입했다.

카페에서 '자막부원'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본 최씨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막부원은 드라마의 영어대본을 한글로 번역해 다수가 자막으로 볼 수 있도록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토익이 만점에 가까울 정도로 영어에 자신 있었던 최씨는 공부 삼아 좋아하는 드라마의 대본을 번역하는 일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다 보니 팬 활동 차원에서 번역에 참여했어요. 10명 정도가 역할을 나눠 영상과 싱크를 맞추고 할당을 정해 번역을 하는 방식이죠."

영상은 개인 간 파일공유가 가능한 '토렌트' 사이트를 통해, 대본은 구글에서 다운로드 받았다. 불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드 영상과 한글자막을 공유하는 카페나 블로그들이 무수하게 생겨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막 공유카페 회원 수십만명…일부 수익 내기도

번역이 쉽진 않았다. 최씨는 전문용어를 정확한 한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수사 관련은 물론 법학, 의학용어까지 찾아보며 공을 들였다. 영어 표현을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가다듬는 데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한 회 번역에 2~3일 남짓이 걸렸다.

"완성된 한글자막 첫 부분에 이메일 주소를 남기기도 하는데 내가 했다는 과시도 있지만 잘못된 부분이나 보완할 것에 대한 피드백을 달라는 의미가 컸어요. 나름대로는 번역 후에 검수도 하고 공을 많이 들여요. 물론 무료로 배포하고요."

최씨 같은 드라마 팬들의 한글자막 제작·유포는 국내에서 '미드열풍'을 이끈 촉매제로 작용했다. 미국 현지에서 인기 드라마가 방영되면 며칠, 짧게는 단 하루 만에 한글 자막이 유포돼 거의 실시간 국내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게 됐다.

포털사이트나 네이트, 네이버, 다음 등의 유명 카페, 블로그 가운데는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미드 목록을 보유, 비공개로 운영되는데도 회원이 수만명에 달하는 곳들이 적잖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아이디만 대면 알 만한 '헤비업로더'들이 등장했고 일부는 이 같은 인기를 이용해 광고소득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재 과학자들이 주인공인 인기 미드 '빅뱅이론'의 경우 미국에서 방영되자마자 하루도 안 돼 수준급 자막을 올려 나름의 팬덤을 형성한 한글자막 제작자 '공대언니(아이디)' 같은 부류도 생겨났다.

◇'가위질'·'장르제약' 합법 DVD는 미드마니아 충족 못 시켜

미드 마니아들은 불법 다운받은 영상에 한글 자막까지 입혀 드라마를 즐기는 것에 대한 비판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정식 수입이나 DVD 출시가 갖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케이블방송 등이 수입해 제공하는 미드에는 장르적인 한계가 있고 잔인하거나 외설적인 장면 등이 모자이크 처리되거나 상당 부분 편집되는 등 작품을 그대로 즐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번역의 질이 떨어지거나 오역이 적잖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드 팬 카페에선 미 방송사의 한글자막 제작자 집단 고소를 두고 "이제 영어를 못하면 방송에서 틀어주거나 DVD로 출시되는 작품 외엔 미드를 볼 수 없게 되는 거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합법적인 루트로 공급되는 미드 시장이 소비자들의 눈높이 아래에 있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현재 다수의 온라인 카페와 블로그 등은 한글자막 파일은 물론 자막 달린 미드 영상 등을 내리고 잔뜩 움츠러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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