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2004년 24년만에 무죄 확정


"정치보복이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 달라."
36년 전 오늘(1980년 9월17일) 계엄보통군법회의는 야권지도자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80년 당시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발생한 5·18 광주민주화 항쟁은 ‘김대중 일당’의 내란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조작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결론이었다. 김 전대통령은 이로부터 24년이 지난 2004년 무죄선고를 받으며 이같은 오명을 씻게 된다.
사건의 시작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군부는 비상계엄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당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공동대표였던 김대중과 그 지지세력 24명을 내란음모·국가보안법·계엄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신군부는 구속기소 5일만에 5·18 민주화운동을 “김대중이 대중을 선동해 민중봉기와 정부 전복을 획책했다”는 내용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7월4일 김대중 등 37명을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육군본부 검찰부에 송치했다. 이듬해 9월17일 김 전대통령은 대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는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 정치보복이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달라." 당시 김대중이 외친 법정 최후진술은 국제사회에 알려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은 김대중 구명을 위해 전두환 정권을 향해 초강경 제재조치를 취했다. 전 세계 지도자와 종교인 그리고 인권단체들도 '김대중 구명운동'에 팔을 걷어부쳤다.
결국 김대중은 사형에서 무기징역, 20년형으로 연이어 감형됐고 1982년 12월 형 집행정지로 출소해 미국으로 사실상의 망명을 떠난다.
미국으로 출국한 김대중은 일체의 정치 활동을 안하기로 당시 전두환 정부와 약속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미국내 정치인들을 만나며 한국의 독재 정치 현실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김 전대통령은 한국 귀국 의사를 발표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32년 동안 계속된 군사정권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1995년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은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정치적·법률적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줬다. 이 법은 재심청구의 요건을 완화하는 특례규정을 두고 이미 사면을 받았거나 형이 실효된 경우에도 유무죄에 대한 실체적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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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대통령 취임 후 김 전대통령은 재임 중이라는 이유로 재심을 미뤄오다 2003년 10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1980년에 유죄를 선고한 것에 대한 재심을 개시해 2004년 2월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