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전두환 정권 수립 계기 된 '10·26 사태'


'탕탕탕' 1979년 어느 가을밤, 청와대 인근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37년 전 오늘(1979년 10월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서거했다. 당시 박정희의 나이 만 62세.
'10·26 사태'로 불리는 이 사건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 대통령의 유신체제에 종말을 고하고 전두환 정권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저녁 6시쯤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한다. 그곳에는 당시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등도 동석했다.
저녁 7시41분, 모델 신재순이 심수봉의 반주에 맞춰 '사랑해'라는 노래를 부르던 중 김재규가 발터 PPK를 꺼내 차지철의 오른손목에 쏘았고 이어 박정희 가슴에 총을 겨눈다.
총격에 가슴과 머리에 치명상을 입은 박정희 대통령은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송 중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으로 차지철 경호실장을 포함한 5명이 사망했다.
사건발생 18일만인 11월13일, 김재규, 김계현, 박선호 등 8명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 혐의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됐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우발적 범죄가 아닌 사전에 공모한 계획적 범죄로 판단한 것이다.
김재규는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이듬해 5월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김재규가 처형되기 며칠 전 교도관에게 남긴 유언의 일부이다. 그렇게 그는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정확한 살해 동기에 대해선 온갖 추측만 난무할 뿐 40년 가까이 명쾌하게 규명되진 못했다. 김재규가 10월 유신으로 박정희에게 반감이 있었고 7년간 범행을 준비해 왔다는 설이 있지만 이 또한 추측에 불과하다. 그 외에도 '우발적 행위', '미국 중앙정보부 사주설' 또한 제기됐었다.
10·26사태 이후 권력의 공백을 메꾼 세력은 바로 군부였다. 당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만든 비공식 사조직인 '하나회'의 핵심인물이었던 전두환이 이 기회를 재빨리 포착하여 권력을 장악해나간다. 이렇게 유신독재는 막을 내리고 과도기의 제4공화국을 거쳐 전두환의 제5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