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오늘…"내 말은 모두 거짓" 반백년 수련한 스님의 깨달음

23년 전 오늘…"내 말은 모두 거짓" 반백년 수련한 스님의 깨달음

이미영 기자
2016.11.04 06:00

[역사 속 오늘]17세 출가해 참선한 '성철스님' 입적…누더기옷 한벌로 평생 살며 '달관한' 삶 몸소 실천

성철스님/사진=나무위키
성철스님/사진=나무위키

"내 말은 다 거짓이여...믿지 말게."

눈웃음이 인상적인 마음씨 좋게 생긴 노승이 해맑게 웃으며 얘기한다.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한 취재진에게 다시금 자신의 말은 거짓이라며 속지 말라고 말하며 가볼 것을 청한다.

이 조롱과도 같은 노승의 말은 알고 보니 일종의 '선어'였다. 참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얻은 일종의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언어에 얽메어 본질을 꿰뚫지 못함을 경계하는 노승의 가르침이었다.

이 노승은 또 다른 명언을 남겼는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다. 700년 전 중국에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란 책의 첫 구절을 따온 것이다. 사물의 형식이 아닌 본질로써 대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도뿐 아니라 한 사회의 큰 가르침이 되기도 했다.

64년간 참선하며 세상의 본질을 보기 위해 노력했던 성철스님이 23년 전 오늘(1993년 11월4일) 입적했다.

1912년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난 그는 진주중학교를 졸업한 17세 나이에 출가한다. 경남 합천군에 있는 해인사에 들어간 17세의 영주라는 소년은 불가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련했다.

대구 팔공산에서 앉아있는 자세로 수련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8년간 이어가기도 했다. 당시 그는 잠도 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법가의 깨달음을 얻을 때 쯤 그는 '성철'이란 법명도 얻게 됐다.

그는 누구보다 '참선'을 강조한 스님이었다. 세상의 지식에 얽메이지 않고 오로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련이 진정한 불가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잠을 많이 자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간식하지 말라 △마음닦는 사람에겐 책보는 것이 비상이다 △해제중에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5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철스님은 자신 스스로도 엄격한 삶을 살았다. 그의 방은 먼지 하나 안나오는 정돈된 상태를 항상 유지했다. 그가 평상 한벌로 버틴 '누더기 승복'도 유명하다. 그는 1981년 조계종을 이끄는 종정이 된 후에도 구멍난 옷을 기워 입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선 3000배를 해야 한다'고도 정했다. 누구나 평등하되 참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성철스님을 만나고자 했으나 이같은 이유로 불발됐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항상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3000배도 아이들이면 '면제'됐다. 아이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속세를 떠나 수행에 열중했던 큰 스님에게도 다소 아쉬운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가 종정으로서 조계사를 이끌던 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던 시절, 그의 종교적 동지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이들을 지지했던 것과 달리 성철스님은 소극적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는 1987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당시 시국선언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성철스님은 '기다려 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혹자는 불교의 가르침 자체가 현실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실천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노년에 성철스님은 심장병을 앓다가 향년 82세(법랍 58세) 나이에 입적했다. 다비(화장) 후 사리가 110여개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사리는 해인사 사리탑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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