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에 '저렴쪽방' 110개소 공급했지만…주거환경 개선은 글쎄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리모델링하고 깨끗해지긴 했는데, 그래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어차피 쪽방촌이 희망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아니겠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유모씨(56)는 당장 일주일 후 앞날부터 깜깜하다며 담배 3개비를 연거푸 태우고 있었다.
10년 전 동자동에 들어온 유씨는 사설쪽방을 전전하다 지난 6월 '디딤돌하우스' 개소에 맞춰 운 좋게 이곳에 입주했다. 디딤돌하우스는 서울시가 기업 지원을 받아 기존 쪽방 건물을 임차해 개보수한 뒤 다시 시세 70% 수준 가격에 재임대하는 '저렴쪽방' 사업 중 하나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게·취사공간이 생기고, 세면장과 화장실이 정비됐다.
하지만 유씨는 "여기서 좋아진 건 씻기 편해져 얼굴이 하얘진 게 전부"라면서 씁쓸히 웃었다. 그는 "밖에서 볼 때 건물만 번지르르하지 여기에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미래 없는 건 밖에 있는 (쪽방촌) 사람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저렴쪽방서도 자활·자립 위한 목돈 모으기 어려워
현재 동자동에는 디딤돌하우스 19개소와 새꿈하우스 91개소까지 모두 110개 저렴쪽방이 조성된 상태다. 2013년 10월 처음 문을 연 새꿈하우스는 어느덧 4호 건물까지 늘어났다.
이들 저렴쪽방 월세는 16만~20만원으로 주변 사설쪽방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이다.
서울시는 "월세가 싼 저렴쪽방으로 어려운 이웃의 자립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관련사업을 소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들어본 저렴쪽방 주민의 목소리는 사뭇 달랐다.
유씨는 주로 이삿짐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지병이었던 목디스크와 어깨마비 증상이 심각해지면서 6개월 전부턴 일도 못 하는 상태다. 그의 예금통장 '남은금액란'에는 '138,630'이라는 숫자가 찍혀있었다.
이번달 유씨의 소득은 용산구에서 조건부 생계급여 명목으로 받는 25만원 남짓한 돈과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지원받는 주거급여 19만원이 전부다. 그는 "한달 40만원 남짓한 돈으론 월세(19만원)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면서 "몇년 뒤면 환갑인데 그때는 건설 일용직도 잘 안 받아준다. 차라리 죽는 게 났다"고 한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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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사는 송모씨(54)의 상황도 비슷했다. 의료급여 2종 대상자인 그는 "일을 하고 싶어도 자활근로나 공공일자리 구하는 데 경쟁이 치열하다"면서 "임대아파트로 옮기고 싶어도 보증금에 필요한 목돈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주거환경마저 열악한 새꿈하우스…"수리하기 전이랑 똑같아"
또 다른 저렴쪽방인 새꿈하우스의 내부는 '새꿈'이라는 그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낙후돼 있었다. 디딤돌하우스는 건물 내외부를 대폭 리모델링했지만, 이곳은 도배를 새로 하고, 방문과 장판을 교체하는 정도의 간단한 개보수만 했기 때문이다. 또 대개 관리인이 있는 사설쪽방과 달리 여기는 관리주체가 불명확해 입주민의 요구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해뜨는집(새꿈하우스 3호)에는 동자동 저렴쪽방 110개소 중 절반에 가까운 51개소가 모여있다. 깔끔한 목조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둔탁한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 디딜 틈도 부족해 보이는 1평 남짓한 쪽방에서 김모씨(80)를 만났다. 김씨는 리모델링 되기 전인 2011년부터 이 건물에서 지내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에 건물이 수리되긴 했는데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다"면서 월세도 16만원으로 그전과 똑같다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다른 곳(사설쪽방)에 비해 방이 좁은 편이긴 한데 뭐 어쩌겠냐"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계토끼의집(새꿈하우스 1호)에는 복도 천장에서 물이 샜다. 1층 14호실에 거주하는 김모씨(81)는 복도를 오가는 기자를 먼저 발견하고 "빨리 좀 수리해달라"며 하소연했다. 그는 "비 오든 안 오든 상관없이 지난해 12월부터 방 천장에서 물이 계속 떨어진다"면서 "계속 말하고 있는데 왜 수리가 되지 않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맞은편 쪽방에 사는 정모씨(70)도 "복도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서 아침에 신발이 다 젖었다"면서 "시·구에서 젊은 사람들이 불편한 점 없냐고 자주 찾아오는데, 그때그때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홈리스행동, 동자동사랑방 협동조합 등 단체가 저렴쪽방(디딤돌하우스, 새꿈하우스) 거주민 34명을 대상으로 주거환경 만족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세면시설을 제외하곤 방크기(작아짐 36%-커짐 27%), 화장실(불만족 43%-만족 30%), 방음(잘안됨 32%-잘됨 21%) 등 항목에서 불만족스럽단 의견이 많았다.
박정아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저렴쪽방 같은 단기적 대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서울시는 앞으로도 쪽방촌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일 서울시 자활지원과 주무관은 "저렴쪽방은 24만원 안팎하던 월세를 20만원 아래로 낮춰 주변 쪽방 월세상승도 억제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면서 "시에서는 저렴쪽방에 대한 주민이나 건물주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서울 모처에 85호 규모의 디딤돌하우스 3호점 계약을 마친 상태"라며 임대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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