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전 텔슨전자 대표, 2004년 파산 후 내리막길…警 최근 현행범 체포 조사후 석방…"수사 후 檢 송치 여부 결정"

스마트폰은 상상도 못할 1994년. 36살의 한 청년이 전국에서 쓸 수 있는 삐삐(무선호출기) 왑스(WAPS)를 개발해 국내 삐삐시장을 단숨에 석권했다. 이 청년은 6년 뒤인 2000년 국내 20대 주식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내친김에 휴대전화 시장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도전은 독이 됐다. 글로벌 휴대전화 기업인 노키아와 전략적 제휴에 실패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렸다. 애지중지했던 사옥도 매각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회사는 결국 2004년 파산했고 코스닥 시장에서도 쫓겨났다. 삐삐로 쌓은 자산이 불과 수년 만에 사라졌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 국내 벤처업계 선두주자로 IT(정보기술) 시장을 주름잡던 김동연 전 텔슨전자 대표(60)의 얘기다. 국내 벤처 1세대로 IT 업계 신화로 통했던 김 전 대표지만 파산 이후 좀처럼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수서경찰서는 이달 14일 오후 1시쯤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전 텔슨전자 사옥(현 캠코 양재타워) 지하 3층 A헬스클럽에서 김 전 대표를 폭행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김 전 대표는 용역직원 7명과 함께 A헬스클럽에서 망치로 기물을 파손한 뒤 직원들을 위협하고 폭행한 혐의다.
경찰 관계자는 "(김 전 대표가) 용역들을 데리고 와서 헬스클럽 직원들을 폭행하고 현장에 있는 기물을 파손해 현장에서 바로 체포했다"며 "수사가 끝나는 대로 검찰에 송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폭행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대표는 2004년 텔슨전자가 파산한 이후 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헬스클럽을 임차해 운영해 왔는데 수억원의 임대료가 밀려있었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김 전 대표는 2017년 9월 헬스클럽 경영 경험이 있는 투자자 한모씨(33)를 만나 투자 및 위탁운영계약을 맺었다.
법원 등에 따르면 한씨는 헬스클럽을 위탁 운영하는 대신 김 전 대표에게 매달 급여 1200만원씩 주고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매달 약 3000만원의 임대료를 내기로 했다. 다만 2017년 9월 이전에 발생한 미지급금과 연체금에 대해서는 김 전 대표가 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씨는 영업을 시작하고 한 달여 만에 자신이 낸 임대료가 김 전 대표의 밀린 임대료를 대신 갚는데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또 김 전 대표가 헬스클럽 매출을 관리하는 계좌에서 돈을 빼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독자들의 PICK!
결국 한씨는 김 전 대표에게 임대료를 대신 낼 수 없다고 밝혔고 이때부터 한씨와 김 전 대표은 헬스클럽의 영업권과 점유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법적 분쟁은 김 전 대표가 '한씨가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며 올해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점유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이정민 부장판사)는 4월 "한씨가 지급한 임대료가 기존에 연체된 임대료에 충당됐고 김 전 대표가 한씨와 협의 없이 매출을 사용하기도 했다"며 "한씨에 대해 영업과 출입을 금지할 수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김 전 대표는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법원의 판결이 난 이후에도 김 전 대표는 점유권을 주장했다. 김 전 대표는 올해 6월 용역을 동원해 한씨가 헬스클럽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용접하다가 한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수서경찰서는 지난달 7일 김 전 회장을 업무방해, 재물손괴, 주거침입 등 혐의를 적용해 서울중앙지검에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김 전 대표는 또 이달 13일 새벽 용역 20여명을 동원해 헬스클럽을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다. 한씨는 곧 김 전 대표에 특수폭행, 업무방해, 재물손괴 등 혐의로 추가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건 경찰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법원이 점유금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한 것도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억울함을 풀기위해 한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임대료가 기존에 연체된 임대료에 충당된 건 캠코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이고 연체임대료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다"며 "협의없이 매출금을 사용한 것도 한씨가 먼저 매출금을 마음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가 법적 분쟁에 휘말리면서 이른바 '벤처 1세대의 몰락'이 새삼 주목된다. 대표적인 벤처 1세대인 오상수 새롬기술 전 사장은 2002년 11월 허위공시와 분식회계로 구속기소 됐다가 1심에서 보석과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뒤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새롬기술은 2000년 닷컴열풍을 일으키며 한때 주가 300만원, 시가총액 2조원대의 코스닥 황제주로 군림했다.
이밖에 이진성 인츠닷컴 전 사장은 공금 횡령 혐의로, 김진호 골드뱅크 전 사장은 주가조작 혐의로 각각 법정에 섰다. 장흥순 터보테크 전 대표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김형순 로커스 전 사장은 분식회계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순철 한국창업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우리나라 벤처 1세대들이 성장했던 시기는 승자독식·압축성장의 시기로 규모를 키우고 시장에서 살아남기에 바빴다"며 "성장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법이나 질서는 외면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기업가 정신이 뿌리내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