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오전 10시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 홀로 들어선 70대 남성 A씨는 영자가 빼곡하게 들어찬 메뉴판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일행이 들어오고 나서야 안도한 표정으로 점원에게 입을 떼고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광진구, 성동구, 중구 일대의 음식점 20곳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가게들이 메뉴판에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카페나 서양 음식점에서는 외국어로만 메뉴판을 채운 곳도 있었다.
외국어 메뉴판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누군가에겐 당황스러움을 안긴다. 경기 의정부에 거주하는 직장인 B씨(25)는 "우리 부모님은 영어 메뉴판을 마주하면 좋아하지도 않는 아메리카노만 시킨다"며 "젊은 사람들도 외국어가 어려운데 나이드신 분들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외국어에 대한 이해도는 세대에 따라 격차가 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가 지난해 공동으로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외국어 표현(3500개)에 대해 60대 이하가 60% 이상 이해하는 단어는 1378개(394%)였다. 그러나 70세 이상 응답자의 60% 이상이 이해하는 단어는 242개(6.9%)에 불과했다.
일상 속 외국어 사용에 반감을 느끼는 것은 고령층 뿐만이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74%는 '일상에서 외국 문자 등 외국어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36.1%에 불과했고, 연령대가 높을수록 외국어 표현 사용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C씨(24)는 "외국어 메뉴판이 미관상으로는 예뻐보일 수 있지만 가독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했다. B씨도 "처음 보는 메뉴는 재료가 무엇이고 무슨 맛이 나는지 모를 때가 많은데 표기까지 외국어면 고르기가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같은 '외국어 메뉴판'을 사라지게 할 뾰족한 방법은 없다. 사기업이 이국적인 것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위해 내세운 마케팅 전략에 정부가 임의로 개입하기 어려워서다. 전문가들은 한글로 씌어진 차림표 등을 함께 구비하는 매장이 늘어나야 고객의 불쾌감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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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공공언어 개선 활동의 일환으로 공공기관이나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우리말과 한글 사용을 장려하고 관련 교육이나 안내를 한다"며 "그러나 민간기업은 권한도 없고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적극적으로 한글 사용을 요청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전부터 국경 밖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현재도 이국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며 "음식점도 소비 트렌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인테리어, 메뉴판 디자인 등을 총체적으로 신경써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외국어를 사용하면 소비자가 음식의 재료나 가격 등 중요한 정보를 잘 파악하지 못해 불쾌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며 "상품이나 서비스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외국어 메뉴판과 함께 한글 메뉴판을 구비하는 등의 방법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