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로배우 김지미(한국명 김명자)가 향년 85세로 별세한 가운데, 고인의 과거 작품과 연애사가 관심을 끌고 있다.
고인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 열차'로 데뷔했다. 고인은 영화 '클레오파트라'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미녀로 손꼽혔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비견되며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렸다.
고 김지미의 대표작은 1963년 '선술집 처녀'다. 북에서 월남해 처녀를 가장하고 선술집을 연 젊은 과부 채옥 역을 연기한 고인은 화려한 외모로 극 중 설득력을 높였다.
영화 '불나비'에선 복수를 위해 남성들을 유혹하는 민화진 역을, '육체의 길'에서는 부유한 가정의 가장을 유혹하고 파멸에 빠뜨리는 팜므파탈 메리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김지미는 단순히 관능적인 미인 역만 하진 않았다. 1966년 출연한 '동대문 시장 훈이엄마'에서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강인한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를 연기해 신여성 이미지를 구축했다.

실제 인생에서 고인은 네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쳤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영화 '별아 내 가슴에'의 홍성기 감독과 1960년 결혼했으나 4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후 김지미는 당대 인기 배우이자 최민수의 아버지인 최무룡과 재혼했다. 김지미는 유부남이던 최무룡과 작품을 통해 여러 번 호흡을 맞추다 만남을 갖게됐고 함께 간통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김지미는 1963년 최무룡이 이혼할 당시 최고 위자료액으로 산정되던 400만원을 대신 지급해 화제가 됐다. 당대 400만원은 서울의 집 한 채를 사고도 남는 수준의 큰 액수였다.
이후 김지미는 1969년 최무룡과 이혼할 때도 위자료를 전부 부담하며 남다른 재력을 알리기도 했다. 최무룡은 김지미와의 결별이 알려지자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명언을 남겼다.

고인의 세 번째 남편은 올해 초 은퇴를 선언한 '가황' 나훈아다. 고인은 세 번째 배우자로 무려 7살이나 어린 남성을 얻어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6년간 사실혼을 유지했다.
나훈아와 이혼한 뒤엔 1991년 자신 부모의 주치의였던 심장병 전문의와 결혼했다. 이들은 10년간 함께 했으나 2001년 1월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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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한국영화배우협회 등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최근 대상포진을 앓다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영화인협회는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을 준비하고 있다.
출연한 작품 수만 700여편에 달하는 고인은 제작사 '지미필름'은 설립 및 운영하며 영화 제작자로도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