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인이 상관을 비난하는 말을 했더라도 주변 군인 3명이 업무 중 우연히 들었을 뿐이라면 군형법상 상관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연설이나 공개 게시물처럼 여러 사람에게 널리 퍼질 수 있는 방식으로 모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여러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모욕하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다고 본 기존 판례가 바뀌면서 처벌 범위가 좁혀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장 조희대)는 22일 상관모욕 혐의로 기소된 해군 상사 A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로 본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해군 함정의 전탐장으로 근무한 A씨는 2019년 10월 함정이 기지로 입항하던 중 상관에게 기관 운용과 관련한 의견을 여러 차례 제시했다. 상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A씨는 하사 등 3명이 듣는 가운데 "여기 지휘관 엉망이다. 권고도 듣지 않는다"고 말하고 헤드셋을 책상에 던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A씨의 행동이 군형법상 상관모욕죄에 해당한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군형법은 글이나 그림을 공개하거나 연설하는 등 공개적인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하면 처벌하도록 한다. 대법원은 1999년 판결 이후 모욕적인 말을 여러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했다면 연설처럼 공개적인 방식이 아니어도 상관모욕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7명은 A씨의 행동이 군형법상 상관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27년 동안 유지된 판례를 바꿨다. 다수 대법관들은 단순히 여러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죄가 성립된다고 보기 부족하고 문서나 그림을 공개하거나 연설하는 것 또는 이에 상응하는 정도의 공개적인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수의 대법관들은 "공연한 방법은 모욕의 수단이나 방식이 그 자체로 공연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구성요건"이라며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공연히와는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일반 모욕죄에서 말하는 '공연히'는 여러 사람이 모욕적인 표현을 알 수 있는 상태를 뜻하지만, 군형법상 '공연한 방법'은 표현 방식 자체가 연설이나 게시물처럼 공개성과 확산성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이들은 특히 기존 판례가 공개성이 크지 않은 방법으로 상관을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한 경우까지 군형법으로 가중처벌할 수 있게 했다고 지적했다. 다수 대법관들은 "공연한 방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한 것"이라며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해석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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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A씨의 행동이 처벌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봤다. A씨가 상관에 대한 불만과 화난 감정을 충동적·단발적으로 표현했고 현장에 있던 군인 3명도 각자 업무를 하다 우연히 A씨의 발언을 듣거나 행동을 목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수 대법관들은 "A씨가 군인 3명 앞에 나서서 일방적·공개적으로 상관을 모욕한 것이 아니다"라며 "여러 군인에게 반복적·지속적으로 이루어지거나 확산될 만한 방법으로 표현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법 조항의 문구를 엄격하게 해석해 상관모욕죄의 처벌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여러 사람 앞에서 상관을 모욕했다면 일반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하거나 별도로 징계할 수 있어 처벌의 공백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상관을 모욕한 행동을 모두 처벌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천대엽·오석준·엄상필·신숙희·박영재 대법관도 처벌 범위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했다. 다만 모욕을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가 아니라 해당 발언으로 군 지휘체계나 위계질서가 실제로 흔들렸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이들은 "60여 년 전 군형법 제정 당시의 문언에 얽매여 시대상황의 변화와 발전을 뒤따르지 못한 채 오히려 급진전하는 정보화 추세에 역행하는 해석"이라고 밝혔다. SNS나 단체대화방 등 새로운 방식으로 모욕이 퍼지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