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이만큼은 해야 한다는 게 어느 순간 기본값이 돼버렸어요."
세계 최강 한국 남자 양궁의 '캡틴' 김우진(34·청주시청)은 정상에 서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부담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우진은 지난 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비 특별훈련을 마친 뒤 "우리가 워낙 많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선수들에게는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만큼은 해야 한다는 게 디폴트값, 기본값이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까 선수들이 도전자가 아니라 지키는 사람이 됐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그래서 김우진이 후배 이우석(29·코오롱), 김제덕(22·예천군청)과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꺼낸 말은 조금 의외였다. 정상을 지키려고 하지 말자는 역발상이었다. 김우진은 "선수들에게 다시 도전하는 자가 되자. 결과보다 과정에 더 충실하게 생각하고 그 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많이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이우석 역시 이번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묻자 곧장 "(김)우진이 형의 말을 인용하겠다"라며 "지키는 자가 아니라 도전하는 자가 되자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고, 훈련도 그런 방향으로 맞춰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리커브 대표팀은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던 김우진-이우석-김제덕이 그대로 다시 뭉친 세계 최강 조합이다.
올해 국제무대 성적도 압도적이다. 한국이 출전한 현대 양궁 월드컵 2차 상하이 대회부터 세 사람은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상하이에서는 튀르키예, 3차 안탈리아에서는 미국, 4차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스를 연이어 제압하며 출전한 월드컵 3개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
개인전에서도 경쟁력은 여전하다. 이우석은 안탈리아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올라 은메달을 획득했고, 김제덕은 마드리드에서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우진은 마드리드 예선에서 695점을 쏴 115명 가운데 전체 1위에 올랐다.
국내 경쟁마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올해 아시안게임 최종 평가전에서는 막내 김제덕이 김우진과 이우석을 제치고 종합 1위로 출전권을 따냈다. 앞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평가전 1위를 차지했던 김우진이 처음으로 1위를 막내에게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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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세계 무대가 한국의 독무대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인도의 성장세가 거세다. 안탈리아 월드컵에서 인도의 디라즈 봄마데바라는 이우석을 꺾고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제덕과 오예진(23·광주은행 텐텐)이 나선 혼성 단체전 결승에서도 인도가 한국을 제압했다.

그러나 세 선수는 상대를 바라보기보다 자신들이 해야 할 것에 집중한다. 이우석은 "딱히 특정 선수를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라며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 무엇을 더 보완하면 다음 경기에서는 조금 더 편안하게 운영할 수 있을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김제덕도 "이 세 명이 함께 국가대표팀으로 뛴 지도 이제 5년 정도 됐다"며 "상대를 의식하기보다는 우리가 하는 것만 하면 될 것 같다. 계속 '우리 것만 하자'고 이야기하면서 팀워크를 맞춰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전에서는 세 사람 가운데 예선 상위 2명만 출전한다. 세계 최강 세 명이 먼저 서로를 넘어야 하는 구조다. 이에 김제덕은 "어떤 선수가 뛰든 최상의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한국 양궁의 금메달이 너무 익숙해진 탓에 국민들은 어느 순간 양궁만큼은 편하게 TV를 켠다. 취재진이 "이번에도 걱정하지 않고 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김제덕은 "여기 있는 세 선수 모두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고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금메달이 기본값이 됐다고 하지만, 세계 최강의 궁사들은 '지키는 자'가 아닌 '도전하는 자'로 다시 출발선에 선다. 김우진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남은 기간 부상 조심해서 여름이 지난 만큼 다시 뜨거워지지 않고 시원한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이우석은 "시원하게 금메달로 다 박살내고 오겠다"고 했고, 김제덕은 "세 명의 멤버가 2026년을 똑같이 맞이하게 됐다. 또 똑같은 모습, 자신감 있는 모습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