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전 한국시리즈(KS)에서 상대 팀 에이스에게 당했던 신인 유격수가 이제는 감독이 돼 설욕에 나선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출신 이강철(60) KT 위즈 감독과 박진만(50)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마침내 만났다.
이강철 감독과 박진만 감독은 2일 경기도 수원시 라마다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 참석했다. 역대 한국시리즈 MVP 출신 감독끼리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건 KBO리그 출범 이후 처음이다.
인연은 정확히 30년 전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잠수함 에이스였던 이강철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5경기에 등판해 완봉승 포함 2승 무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0.56, 16이닝 13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활약은 경이로웠다. 3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9이닝 6피안타 2볼넷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다. 5차전에서는 3-1로 앞선 9회 2사 2, 3루 위기에 구원 등판해 공 하나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 세이브를 올렸다. 6차전에서도 선발로 나와 5⅓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해태의 통산 8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흥미롭게도 5차전 당시 이강철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 타석에 있던 선수가 바로 박진만 감독이었다. 볼카운트 2B2S에서 이강철 감독이 투입되자 현대는 박진만 감독 대신 대타 이희성을 내보냈지만,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경기가 끝났다.
1996년 현대에 입단한 고졸 신인 박진만 감독은 정규시즌 115경기 타율 0.283(361타수 102안타)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6경기 타율 0.118(17타수 2안타) 1타점 OPS 0.285에 그쳤다.

박진만 감독은 이날 "199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들어왔는데 이강철 감독님 공은 예전에 오락실에서 보던 것처럼 오다가 갑자기 없어지고 다시 나타났다"며 "몇 년 후에도 KBO리그에서 가장 치기 어려웠던 투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항상 이강철 감독님을 말씀드렸다"고 떠올렸다. 이어 "신인 때 타격이 나쁘지 않았다. 이강철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3할까지 칠 수도 있었는데 2할 8푼밖에 못 쳤다"고 웃었다.
실제로 이강철 감독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잠수함 투수였다. 1989년 해태에 입단해 2005년까지 통산 602경기 152승 112패 53세이브 33홀드 평균자책점 3.29, 2204⅔이닝 1751탈삼진을 기록했다. 특히 KBO리그 최초이자 유일한 10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및 세 자릿수 탈삼진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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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감독도 이후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유격수로 성장했다. 현대와 삼성, SK를 거치며 통산 1993경기 타율 0.261, 1574안타 153홈런 781타점을 기록했다. 뛰어난 수비를 앞세워 현대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만 6개를 수집했다.
마침내 2006년에는 자신도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삼성 소속으로 한화 이글스와 맞붙어 6경기 타율 0.280(25타수 7안타) 2타점 4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3차전에서는 연장 12회 결승타를 터트렸고, 탄탄한 유격수 수비까지 인정받아 MVP를 차지했다. 이강철 감독이 MVP에 오른 지 정확히 10년 만이었다.

이강철 감독도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박진만 감독이 현대 창단 첫해 신인 유격수로 출전했다. 수비는 워낙 잘했고 경기를 치르면서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난다"며 "(1996년엔) 나도 그렇게 받고 싶었던 MVP를 받게 돼 너무 기뻤다"고 돌아봤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두 사람은 감독으로 우승을 다툰다. 이강철 감독은 2021년 KT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고, 박진만 감독은 2024년 준우승의 아쉬움을 털고 삼성의 12년 만의 정상 탈환을 노린다.
한국시리즈 MVP 출신 사령탑들의 이번 시리즈 MVP 예상도 흥미로웠다. 이강철 감독은 "모든 선수가 MVP가 될 정도로 좋은 플레이를 했으면 좋겠다"면서도 "박영현 선수가 4세이브를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에 박진만 감독은 "원태인 선수가 받을 것 같다. 중간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고 마지막 포효를 할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기대했다.
박진만 감독은 "선수로서 한국시리즈를 많이 치러봤지만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는 진짜 하늘과 땅 차이다. 2024년에도 KIA에 지면서 준우승의 아픔이 있었다"며 "프로에서는 2등이 필요 없고 1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제 두 사람은 3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리는 한국시리즈 1차전을 시작으로 감독으로서 다시 우승을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