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소비자 파산제` 정비를
경기과열 징후가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다. 골프장 회원권 값이 치솟고 증권사 객장에는 고양이를 안은 사모님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실세금리도 연일 연중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몇 년만에 돌아온 `주가지수 1000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공방이 한창이다. 뜨거운 계절, 그것이 오늘 우리 경제의 모습이다.
그러나 햇살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스웨덴의 경제학자 빅셀이 백년전에 지적했듯 경기상승기에 피라미드 판매조직처럼 번져 나갔던 신용팽창은 조만간 이자율의 상승과 함께 고통스러운 반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반전의 도래는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실세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했고, 얼마전 취임한 통화정책의 새 책임자도 소박(?)한 어투로 이자율의 상승 가능성을 강하게 내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반전의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다.
반전 비용과 관련해 현재 가장 준비가 덜 된 분야는 파산, 특히 소비자 파산 분야이다. 가구당 평균 부채가 2천 몇백만원이고, 개인별 부채가 가처분 소득의 90%선에 도달했다는 수치가 알려주 듯 개인신용 팽창은 그 규모나 속도에 있어 가히 단군 이래 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율이 상승할 경우 소비자 파산은 예정된 진로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소비자 파산에 관한 제도적 정비는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다. 소비자 파산은 물론 일반적인 파산의 논리에서 다뤄져야 하지만 그 대상이 법인이 아니고 자연인이라는 점에서 몇가지 추가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다.
첫째, 회사는 완전히 청산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쓸모 없는 회사는 파산절차를 통해 사라질 수 있지만 사람은 파산 이후에도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즉 채권자의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는 것 못지 않게, 채무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 후자에 대한 고려가 아직도 미비하다.
둘째, 파산에 부가되는 징벌적 요소를 빨리 탈색시켜야 한다. 채무불이행을 더 이상 형벌로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은 근대적 파산제도가 확립한 가장 중요한 원칙중 하나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파산선고가 일종의 형벌처럼 작용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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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거래를 정상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의사나 변호사 등 자격증이나 면허를 가지고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 파산선고에 따라 실질적인 자격정지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자격정지가 본질적으로 형벌의 한 종류라는 점에서 보면 이런 상황은 근대적 파산원칙을 부정하는 처사에 해당한다.
셋째, 법원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법인 파산의 경우에는 관련 당사자들이 충분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법원은 공정한 심판관으로만 기능하면 된다. 그러나 소비자 파산의 경우에는 채무자가 이 분야에 대해 충분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법원이 단순한 심판관보다는 적극적인 중재자로 기능해야 한다. 물론 제 권리도 제대로 못찾아 먹는 사람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여줘야 하는 일은 귀찮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법원은 국민들의 존경과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정책당국이 미적미적하고 있는 동안 벌써 극약을 마시고 일가족이 자살하고, 젊은이들이 밤거리를 헤매며 아까운 청춘을 시궁창에 흘려 버리는 비극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당국의 분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