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디스 일본에 굴복
세계 금융가에서 보기드문 진귀한 장면이 일본 의회에서 지난 12일 연출됐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국가 위험 부문 담당 부사장 겸 선임 애널리스트인 토마스 바이른이 중의원(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 일본의 엔화표시 채권등급을 왜 'Aa3'에서 'A2'로 두단계 내렸는 지를 설명한 것이다.
바이른 애널리스트는 "신용평가의 핵심은 특정 국가의 부채 수준"이라며 "일본은 전후 가장 많은 수준의 부채가 있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40%에 달하는 부채가 위험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게 그의 등급하향 이유였다. 그는 약 30분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곧바로 의회에서 빠져나갔다.
그의 모습이 외신을 타고 전세계로 타전된 뒤 세계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우스꽝스럽다'는 말로 일갈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일본의 등급조정'이라는 사설에서 스탠더드 앤 푸어스(Stand & Poors)를 '비열한(poor) S&P'로, 무디스(Moodys)를 '변덕쟁이(moody), 무디스'로 부른 데는 이유가 있다며 무디스의 애널리스트가 의회에 출석한 것은 선생이 학생에게 "0점"을 준 이유를 설명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당초 일본 정부는 등급하향 저지를 위해 세계 3대 신용평가사를 상대로 전방위 외교를 펼쳤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는 일본의 로비를 '협박'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로비의 결과는 '등급 강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국제 금융계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디스가 출석요구에 응한 것은 등급 하향에 사적인 감정이 개입됐다는 일부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무디스의 이같은 저자세는 97년 10월 한달간 등급을 네차례 낮추며 우리나라를 '전전긍긍'케 했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세계 최대 채권국(11조달러) 일본이 원조를 해주고 있는 보츠와나보다 등급이 낮을 이유가 있느냐"고 따지는 일본 의원들은 10년 경기 침체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일본 '국력'을 상징했다. 일본의 '국력'은 무디스를 압도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