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8강 신화가 남긴 숙제

이건 기적이다.
48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서 단 한차례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팀, 변변한 월드스타 하나 없는 팀, 다른 모든 팀들이 내심 1승의 제물로 삼으려고 했던 한국 축구팀이 축구 강국들을 연파하며 8강에 진출한 것은 세계를 화들짝 놀래킨 대이변이었다. 이탈리아와의 극적인 경기 직후 AFP통신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승리"였다고 타전했고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한국팀이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고 흥분했다.
기적은 삼위일체가 빚은 운명이었다. 지략과 리더십을 갖춘 감독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가야 하는 지를 아는 눈밝음을 가지고 있었다. 피나는 훈련으로 체력을 다지고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정신력으로 무장한 선수들은 최후의 한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불살랐다. 경기장과 거리를 가득메운 응원단의 기는 한국팀의 경기를 지배하는 마법이 되었다. 모두의 승리였다.
한국 축구는 한국의 역사를 닮았다. 월드컵 도전과 좌절의 여정은 애환과 분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나 변방에 머물던 한반도는 이제 동북아의 중심국이자 세계의 주연급 국가임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세기가 바뀌고 세계의 거대한 조류가 서서히 물줄기를 바꾸는 시점에 한국은 월드컵 개최국이 되어 전세계에 '기적의 한국'(Miracle Korea)을 선명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과제가 남는다. 히딩크는 벌써 한국 축구의 장래와 구조적 기반을 염려하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외국인 감독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는 한국 축구팀의 환골탈태와 도약을 배워야 한다. 무엇인 진정한 리더십(감독)이며 비전을 현실화시키는 팔로우십(선수)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이 양자를 영글게 하는 문화(응원)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깨달아야 한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거둔 신화는 대한민국이 전혀 다른 차원의 나라로 거듭난다는 축포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게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