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투자 없이 미래없다
옛날에는 꼬박꼬박 돈을 모으는 게 미덕이었다. 자원도 자본도 없는 나라에서 맨손으로 투자재원을 마련하자니 그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소비가 미덕'이란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은행에는 한푼두푼 돈이 쌓이고,기업들은 그 돈을 대규모 설비투자에 투하했다. 그야말로 남의 돈 무서운 줄 몰랐다.
그런데 97년말 IMF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과잉투자에 혼이 난 기업들은 투자를 끊었다. 공장과 설비가 급매물로 쏟아졌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폭탄세일'이었다. 매물 구경에 나선 외국인들은 "이런 신식설비가 이렇게 싸다니"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생활에 쪼들린 가계는 저축을 줄였다. 아타깝지만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문제가 심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가계와 기업에 체기가 빠졌는데도 저축은 하염없이 줄고 투자는 살아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11 테러사태'가 터졌다. 다급해진 정부는 원금을 보장해주는 주식투자상품을 내놓겠다고 우겼다. 한국은행 돈을 무제한 찍어서라도 경제와 증시를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오죽했으며 이같은 멘트가 나왔을까.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 내수시장 활성화 방안이었다.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재정자금을 건설 쪽에 쏟아 붓고, 각종 건설규제를 마구잡이 식으로 걷어 냈다. 저축도 좋지만 살 것은 사고, 쓸 것은 써야 한다며 소비를 조장했다. 자동차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는데도 특별소비세를 대폭 감면해 주었다. 금리를 너무 낮춰 은행에 돈을 맡기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는 `소비가 미덕'인가 싶었다.
함정은 여기에 있었다. 경기는 지난해 3분기를 바닥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9.11 사태 이후의 경기동향은 예상을 뒤집을 정도로 상승 탄력이 강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기를 더 띄우겠다며 쉬지 않고 돈을 퍼부었다. 금리를 낮추고 소비를 자극했다.
그것이 너무 과해 끝내 다시 탈을 내고 말았다. 지난해 말 장기간 동면하던 건설경기가 꿈틀대기 시작할 때 정부는 `국지적인 현상'이라고 무시했다. 내심 "이제야 약발이 먹힌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서민들이 신용카드 빚을 불려가는 것도 방관했다. 은행 돈을 빌려 아파트 투기에 나서는 것을 조장했다. 금리를 낮췄는데도 저축만 줄지 투자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볍게 넘겼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0% 였는데 설비투자 증가율은 -9.8%였다. 올해도 6%대 성장이 예상되지만 설비투자는 바닥을 기고 있다. 한때 40%를 넘던 저축율은 20%대로 떨어졌다.
과다저축-과잉투자가 이제는 과소저축-과소투자도 뒤바뀌고, 과잉통화가 이곳저곳 쏠려 다니면서 과소비와 거품 투기를 부채질하는 비생산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본격 레이스에 돌입한 대선 경쟁은 이런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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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짱이처럼 흥청대는 소비만으로는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없다.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과 투자 없이는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투자 없으면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