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머리깎기와 똥누기

[광화문]머리깎기와 똥누기

박종인 기자
2002.09.26 15:01

마감이후[광화문]머리깎기와 똥누기

집사람과 싸움을 하다 하염없이 밀릴 때 내가 마지막으로 뽑아드는 비장의 무기가 최근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사시미 칼이나 도끼, 망치, 또는 권총 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실 이런 눈에 보이는 어설픈 무기로는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다. 특히 부부간에는….

생각해 보라. 부부싸움을 하다 남편이 권총을(아니면 칼, 도끼, 망치를) 꺼내든다고 해서 겁먹을 여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부부싸움은 목숨이 걸린 일생 일대의 대접전이기에 이깟 무기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는 것이다. 행여 잘못 꺼냈다가 패배를 시인하는 걸로 오인될 수도 있겠다.

상대를 한방에 보내는 건 역시 말(言)이다.

무심한 눈초리와 한마디 힘없이 흘리는 말에 여자는 무너지는 것이다. 한숨이나 헛기침, 또는 말없음(無言)도 넓게 보면 말의 범주에 들어간다.

내 비장의 무기는 "머리깎고 절로 들어간다"는 것인데 약발이 그만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2002년 9월12일 이른 아침 용도폐기됐다.

"낄낄낄, 오늘 신문에 아주 속시원한 뉴스가 하나 있네.당신도 한번 읽어보시지."

집사람이 휙 던진 조간신문의 사회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40세가 넘으면 조계종을 통한 출가(出家)가 불가능하다. 조계종은 10일 임시 중앙총회를 열고 출가 연령을 지금의 `15세 이상 50세 이하'에서 `15세 이상 40세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내 나이 42살. 앞으로 8년간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었던 부부싸움용 무기 하나가 졸지에 사라진 것이다. 종교 담당 기자에게 문의해 본 결과 `천태종이나 태고종도 있으니 큰 걱정마시라'는 답을 들었지만 약발이 예전같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뭔가를 구획하고 제한하는 일은 늘 피해자를 양산하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 집사람 처럼 반대편에 있는 이에겐 뜻밖의 횡재가 되기도 하겠지만….

`인도 사람들은 이른 아침마다 물통 하나씩을 달랑 들고 어디론가로 걸어간다. 처음에 나는 그들이 한 끼 밥을 얻기 위해 슬프게 걸음을 옮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똥을 누기 위해 그렇게들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적한 공터나 흙탕물이 흐르는 개울가를 찾아서 모두들 느긋하게 말이다. 물론 물통의 물은 뒤처리를 위한 것이었다.실제로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철로변에 저만치 쭈그려 앉아 태연히 똥을 누는 사람을 종종 볼 수도 있다.'

시인 안도현의 산문집 `사람'에서 발췌한 글이다. 중국에도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이 많다고 한다.

좀 엉뚱한 말이지만 이처럼 툭 터진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태연스레 똥 누면서 자라나는 인도와 중국의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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