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벤처인들이여, 떠나라

[광화문]벤처인들이여, 떠나라

이중수 부장
2002.10.14 12:24

[광화문] 벤처인들이여, 벤처를 떠나라

벤처기업의 성공 여부는 통상 기술개발에 달려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보다 의사결정 라인이 간단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조직 규모가 작아 대기업보다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또 신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수백~수천명의 많은 연구인력보다는 적게는 4~5명, 많아야 40~50명의 핵심인력(Critical Mass)을 갖추고 있으면 가능하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더욱이 벤처 붐이 일면서 과거 재벌기업들이 고급인력을 독점하던 시기보다 고급인력의 수급 상황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개발할 기술 아이템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회사를 설립할 자금이 갖춰지면 너도나도 중소 규모의 벤처기업을 세우려 달려든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의 경험을 거치면서 벤처기업의 성공여부가 기술개발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기업들이 깨닫게 됐다.

한때 정부출연연구소나 대기업의 연구소 직원들이 그럴듯한 기술아이템을 가지고 창업하겠다고 줄줄이 나섰지만 대부분 실패의 쓴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연구소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이나 기술아이템이면 자금을 끌어들여 창업해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었다.

굳이 국가와 대기업에 좋은 일 시키고 정작 어려운 기술을 개발한 자기들은 단순 샐러리맨으로 전락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면서 비판했던 이들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벤처로, 벤처로"를 외치며 연구개발의 현장을 떠났던 것이다.

벤처기업인들은 이제 더 이상 기술지상주의를 부르짖지 못하게 됐다. 왜냐하면 이들이 벤처를 해본 결과 기술보다 더 중요한 기업의 요소를 알게 됐다.

바로 상품화와 마케팅이 핵심 요소였던 것이다. 개발한 기술을 상품화하지 못하면 그건 실험실의 연구과제에 불과하다. 또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면 기업으로서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굴뚝기업들은 이런 점을 이미 수백년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지난 수년간 붐을 이룬 우리의 벤처기업들은 이같은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또 몰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왔었다.

혹자는 아직도 기술개발이 그래도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개발한 기술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금력과 제조공정의 문제 정도로 치부한다. 이들은 기술개발이 전체의 80%이고 이를 굴뚝기업에 맡겨 상품으로 만드는 일은 20%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쯤에서 기자의 시각을 결론부터 말하면 '상품화까지 고려하지 않는 기술은 그 기술이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도 쓸모없는 또 하나의 쓰레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들이 20%라고 주장하는 상품화 공정에 들어가 보면 거꾸로 '상품화가 전체의 80%'인 경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상품화가 끝나더라도 그 다음에 마케팅이라는 블랙홀이 기다리고 있다. 개발한 기술을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판로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대기업이 하마처럼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자기 시장을 뺏길까봐 온갖 방해공작을 한다. 페어플레이는 진즉부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돈이 될성부른 시장이다 싶으면 대기업은 자본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이때 이같은 불공정하거나 중소 벤처기업을 압박하는 대기업의 행태를 조정하는 곳이 바로 정부 부처이다.

최근 한 벤처기업이 세계적인 반도체칩을 개발,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루슨트테크놀러지, 일본의 소니와 NEC, 유럽의 지멘스 등도 개발하지 못한 상품이어서 가히 세계적 경쟁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품인 것같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이를 가로막고 갖은 방해공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 업체에 그 제품을 사지 말라고 로비도 하고 라이선스를 주지 말라는 레터까지 보냈다니 가관이다.

이런 일이 어찌 이번 한두번일까 마는 이같이 '국익에도 반하고 공정경쟁에도 역행하는' 대기업의 대표가 건재한 것도 한국의 현실이다. 오히려 이런 경영자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업인으로 뽑히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기업현실에 서글퍼진다.

조정역을 해야 할 정부의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지만 공무원들이 이같은 우리 기업현실을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또 한가지. 벤처인들이 기업을 한다고 모여든 코스닥이 이제 문을 닫을 지경이다. 코스닥 엑소더스까지 거론되는게 오늘 우리 시장의 현실이다.

벤처기업하기가 이처럼 어려운데도 밤낮없이 기술을 개발하고 상품화에 여념이 없는 국내 벤처인들을 보면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을 보는 느낌이다. 벤처인들이여, 차라리 벤처를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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