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한중일 경제리그 만들기
지난 6월 월드컵 열풍은 정말 대단했었다. 나는 그때 광화문 네거리에 서서 국운융성의 기운을 느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 모여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나라가 어디 또 있겠는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똑같은 색깔의 옷을 차려 입고 뜨거운 함성을 토해낼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이웃나라들의 응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아시아 역내 국가들의 정서적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기세를 몰아 한-중-일 3국간 프로축구 리그를 만들자는 구상이 나왔다. 그뿐인가. `축구 4강'을 `경제 4강'으로 이어가자는 청사진도 나왔다. 이른바 `포스트 월드컵 대책'이다. 그런데 요란한 그 대책이 얼마나 부실했던지 지금은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기초체력을 다지고 남다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금새 잊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20조원을 넘는다던 월드컵의 경제적 파급효과도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한-중-일 3국간 경제협력 체제를 구축하자는 구상이 꼭 이런 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정말 좋은데 어떻게 하자는 실천계획과 행동강령이 없다. 말은 되는데 그걸 현실화시킬 리더십이 없다.
K리그와 J리그,그리고 중국의 C리그(?)를 묶어 동북아 리그로 발전시키면 축구 보는 재미가 배가될 게 분명하다. 유럽과 남미의 벽을 넘지 못해 만년 이류가 돼 버린 아시아의 축구 수준도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서울에서 베이징과 도쿄가 모두 비행기로 2시간 거리 안에 있으니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동북아 리그는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 대권경쟁에 빠져 정신이 없는데 일이 될리 없다. 그들에게 동북아 축구리그를 만들자는 한가한 말이 먹혀들리 없다. 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몽준 후보도 이젠 축구 얘기를 하지 않는다.
지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AESAN+3'라는 역내 협력채널을 탄생시켰다. 한-중-일이 먼저 손잡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뒤늦게 ASEAN에 가세한 모양새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경제력으로 본다면 한-중-일 3국이 핵심인데 패를 쥔 쪽은 ASEAN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과 일본은 지금도 한국보다는 ASEAN을 자기 품안에 끌어 들이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우리는 말만 거창하지 실상은 국력을 소진하는 대권다툼에 날 새는 줄 모른다. 3자가 이 모양이니 동북아 경제협력체는 물론 축구리그도 만들기 어려운 상태다.
한-중-일 3국의 `경제리그'는 `축구리그'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한 과제다. 게다가 축구리그는 `선택'이지만 경제리그는 `필수'다. 한-중-일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고 경제발전에 공조한다면 대단히 위력적인 시너지효과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축구리그라면 몰라도 경제리그라면 히딩크도 못할 게 아닌가.
용출하는 동북아 3강의 기운을 한곳으로 몰아 에너지를 증폭시킬 수 있는 리더가 나오지 않는 한 동북아 융성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