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남용되는 `신용 항생제`

[기자수첩] 남용되는 `신용 항생제`

서명훈 기자
2002.12.05 07:00

(5일중)[기자수첩] 남용되는 `신용 항생제`

얼마 전 TV에서 항생제 남용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부모들이 사용한 항생제가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돼 어떤 약도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금융기관들도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금융기관들은 정부와 정치권에서 신용불량자 사면조치와 개인워크아웃 대상자 확대와 같은 '항생제'를 잇달아 처방하면서 채권추심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나아가 신용불량자가 되더라도 조금만 참으면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보장해 주리란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한 카드사 임원은 "처음부터 갚을 생각 없이 카드를 쓰는 사람도 많고, 갚고 싶을 때 갚을테니 더 이상 전화하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다"며 "신용불량자 천국이란 말이 실감난다"고 토로했다.

 

빌린 돈을 갚고, 소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경제활동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흔들려서는 안될 기본 원칙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신용불량자 증가로 인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더 큰 어려움에 빠지는 악순환을 막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증상만을 완화시키는 '항생제'만을 주입할 것이 아니라 원인을 치유할 수 있는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무분별한 소비생활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서민들이 이자가 높은 급전대출과 카드 현금서비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금융 구조상의 문제는 없는지, 사면받은 신용불량자가 몇 년 후에 다시 신용불량자가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를 따져봐야 할 때다.

 

동양의학이 서양의학과 가장 대비되는 점은 병증을 완화시키기 보다 병의 근본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데 있다. '허준의 지혜'가 담긴 처방전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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