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펀드매니저 "고민"과 "고생"

[기자수첩]펀드매니저 "고민"과 "고생"

이기형 기자
2003.01.27 16:43

[기자수첩]펀드매니저의 "고민"과 "고생"

외국의 유명 펀드매니저들은 모니터를 보지않는 날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한달동안 한적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 한국의 펀드매니저들에게는 꿈만 같은 얘기다. 새벽 7시전에 출근해 12시간이상 사무실에서 보내기 일쑤다. 회의와 매매를 반복한다. 데이트레이더에 가까운 펀드매니저들도 한둘이 아니다.

"한국의 펀드매니저들은 너무 힘든거 아닌가요"라고 대형투신운용사 A본부장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좀 의외였지만 명쾌했다. "외국 펀드매니저들은 고민을 하고, 우리 펀드매니저들은 고생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고민과 고생의 차이다. 우리 펀드매니저들은 몸고생, 맘고생을 많이 할 뿐 진정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펀드매니저에 대한 평가시스템이 잘못된 데 따른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급등락하는 시장에서 길어야 1년, 짧게는 한달 아니 한주간의 실적을 평가하는 관행이 문제라는 얘기다. 펀드매니저 스스로 운용철학을 가지고 펀드를 운용해나갈 수 없는 구조다. 실제로 우리 매니저들은 눈앞에 실적에 급급해 허둥되는 일반 주식투자자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매매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번 사면 평균 5년동안 종목에 손대지 않는다"는 미국 도이치에셋매니지먼트 소속 '코리아펀드' 펀드매니저 존 리(한국명 이정복 45)씨의 말은 우리 투신운용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미국 월가에서 1조2000억원 규모의 코리아펀드를 운용, 최근 5년간 연평균 35.45%의 수익을 올렸다.

5년뒤 수익을 가져다줄 종목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펀드매니저'가 있다. 그리고 단기실적을 쫓아 급등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들여야 하고, 급락장에서는 손절매를 해야하는 '고생하는 펀드매니저'가 있다. 고객들이 둘중 어느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하다. 600선이 붕괴된 오늘, 기관은 1000억원이상 매도했다. '주식을 자꾸 사고 파는 것은 시장보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존 리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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