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전직 은행장의 '고독한 싸움'

[광화문]전직 은행장의 '고독한 싸움'

박종면 부국장
2003.07.14 12:52

[광화문]전직 은행장의 '고독한 싸움'

`사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익과 관계되는 국가적 프로젝트라고 판단해’ 잘 나가던 한미은행장 자리를 버리고 상업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의 초대 은행장을 맡아 부실은행 살리기에 안간힘을 쏟았던 김진만 전행장이 예금보험공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린 것은 지난해 10월 초였다. 그때부터 올 5월말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기까지 그의 고독한 싸움은 계속됐다.

 

김 전행장이 송사에 말려든 것은 예보가 공적자금 투입을 초래한 부실 책임자 뿐 아니라 공적자금 투입이후 주식투자 금융사고 등으로 은행에 손실을 초래한 사람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기로 한데 따른 것이었다. 김 전행장은 그가 은행장으로 있던 2000년 당시 주가가 30% 하락하면 손절매해야 한다는 내부 규정을 어겨 은행에 299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예보를 대신해 자신이 2년간 몸담았던 우리은행으로부터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받았다.

 

김 전행장은 소송으로 맞섰다. 증시 상황이 예상과 달리 악화돼 손실이 났지만 주가가 반등할 경우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경영상의 판단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특히 그는 대다수의 공적자금 투입은행 전현직 임원들이 예보의 가압류를 피하기 위해 자신 명의의 부동산과 예금 채권 주식은 물론 골프장 회원권이나 자동차까지 팔고 명의를 변경하는 상황에서도 내가 떳떳한데 죄인처럼 왜 재산을 숨기느냐며 맞섰다.

 

자신이 몸담았던 은행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고 자신 명의의 재산은 남김없이 압류당해 본 은행 관계자들은 이런 일은 두번다시 할 짓이 아니라고 말한다. 법원으로부터 가압류 통지서가 날아들면 그날부터 아내는 몸져 눕고 식구들은 웃음을 잃는다고 한다. 더욱이 장손으로 태어나 자신 명의로 돼 있는 문중재산이 압류당하는 경우 집안 어른들을 볼 낯이 없다는 것. 김 전행장도 이 과정을 겪어야 했다.

 

은행장쯤 하다 퇴직하면 삼성전자와 같은 초우량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거나 유명 로펌이나 외국계 컨설팅회사의 고문으로 가 노후를 보장받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김 전행장은 그렇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중소 컨설팅 투자회사에서 1년여 근무하다 지난 3월 퇴직했다. 그곳에서도 김 전행장은 자신이 회사에 기여하는 게 없다며 보수는 받지 않고 사무실만 이용했다. 내가 왜 죄인처럼 재산을 숨기느냐며 맞섰던 그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 전행장은 지난 5월말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아 8개월여의 고독한 싸움을 끝냈다. 법원은 그가 `은행장으로서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는 판정을 내려 그의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시켜 주었다.

 

김진만 전 행장은`사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익과 관계되는 국가적 프로젝트라고 판단해' 뱅커로서 여생을 던졌는데 우리사회는 그를 공적자금 투입의 속죄양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무래도 우리는 김 전행장에게 큰 빚을 진 것 같다. 그의 자존심을 너무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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