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외국자본이라는 '미명(微明)'
미국계 론스타펀드가 지난해 10월말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래 연일 주목받고 있다. 국내진출 직후인 지난해 말 론스타는 외환은행 자회사인 외환카드를 함께 인수할 경우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며 외환카드를 폐쇄하겠다고 버텨 금융당국을 당황케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외환카드를 울며 겨자먹기로 인수한 뒤 론스타펀드는 외환카드의 자금이 바닥났다며 현금서비스를 중단했다. 800만명에 이르는 외환카드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는 것은 당연했다. 고객들이 항의가 빗발치고 여론이 악화되자 론스타는 하룻만에 현금서비스를 재개했다.
론스타의 진면목은 올들어 보다 확실하게 드러났다. 계약직을 포함 총 3500명에 이르는 외환카드 직원중 70%에 육박하는 2400명가량을 정리하겠다고 나섰다. 70%수준의 인력 구조조정은 IMF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서도 높은 비율이어서 외환카드 노조와의 충돌은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론스타의 완승으로 끝났다.
지난 주말 외환카드 노조와 론스타는 밤샘 협상끝에 정리해고 대신 명예퇴직을 추진하고, 신용카드사업본부를 신설키로 합의했지만 론스타는 당초 목표한 인력감축 대비 기껏 8명에 모자라는 숫자를 줄임으로써 목표치를 사실상 다 채웠다.
외환카드 노조와 싸움에서 론스타는 국내 금융권 최초로 일요일 밤에 노조원들이 식사를 하러 간 사이 용역 직원들을 동원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또 새벽 3시에 직원들에게 휴대폰을 통해 정리해고를 통고하는 기민함도 보였다.
론스타와 싸움에서 진 건 노조만이 아니었다. 론스타는 지난 2월초 금융당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야회의를 통해 전격적으로 LG카드 지원을 거부하고 말았다. 금융당국자들도 `가슴에 묻고 간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이헌재 부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시장은 철부지들의 놀이터가 아니다"며 경고 발언까지 했을까.
물론 모든 외국자본이 론스타같이 눈앞의 이익만 챙기는 단기성 투기자본은 아니다. 한미은행을 인수한 씨티그룹 같은 곳은 장기 사업성 자금이기 때문에 주가 외에도 금융당국과의 우호적 관계, 여론과 소비자의 동향까지 살핀다. 그렇지만 씨티 역시 수익성을 추구하는거대 자본일 따름이다. 자선펀드는 결코 아니다. 자비로운 자본은 애초에 없다. 그건 국내 자본이든 외국자본이든 다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에겐 외국계 자본이라면 무조건 선진금융기법의 전도사로 믿고 따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외국계 자본이 기업금융을 중단하고 소매금융에 치중해도 선진금융기법으로 여겼고,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이 쓰러져도 지원하지 않는 게 시장원리에 충실한 선진금융으로 착각하기까지 했다.
미명(微明)'이라는 말이 있다. `보지 못하는 빛'이라는 뜻이다. `확실하고 분명한데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의미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젠 우리도 외국자본이라는 `미명'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