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뉴욕 휴대폰, 지하철에선 고철"

[르포]"뉴욕 휴대폰, 지하철에선 고철"

애틀란타,뉴욕=이승제 기자
2005.05.25 11:25

[르포]"뉴욕 휴대폰, 지하철에선 고철"

지난 19일부터 일주일간 미국을 다녀왔다. 몽고메리, 애틀란타, 뉴욕을 거치는 일정이었는데 가는 곳마다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단 일주일에 불과한 체류었지만 미국 서비스산업이 위기에 몰리고 있고, 그래서 미국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서비스산업은 분통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미국 서비스산업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핵심 경쟁력인 서비스 부문에서 이렇듯 낙후됐음에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레스터 C. 서로우(Lester C. Thurow)는 '지식의 지배(Building Wealth)'에서 미국이 빗나간 서비스산업 전략을 채택,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앞으로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비스산업의 ITㆍ디지털화를 외면한 채 고용 창출 극대화에 주력한 나머지 서비스산업의 질적 저하를 초래했고, 이에 따라 성장잠재력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대착오적인 서비스 산업 전략에 따라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생산성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이다. 서비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했던 EU 국가들이 흑자 행진을 이어가는 반면 미국은 만성적자 구조를 온존시키고 있다는 결론이다. 단 몇일의 일정에서 그의 경고가 기우가 아닌 현실로 진행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진설명=뉴욕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간판과 조명은 미국 자본과 경제의 활력과 화려함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비스 산업의 퇴락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광고판이 눈에 띤다.

#시간을 잡아 먹고 있는 수작업...

20일 오후. 미국 애틀란타 공항. 뉴욕 라과디아 공항으로 가기 위해 국내선 탑승절차를 밟았다. 공항에 늦게 도착한 나머지 시간에 맞춰 탑승할 수 있을 지 초조했다. 티켓팅 하는 과정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일행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티켓팅이 빨리 진행되기를 원했지만, 정작 티켓팅 담당 직원의 손은 한없이 느렸다. 차례가 돼 창구 앞에 섰을 때 여직원에 물었다. "많이 늦어 제때 보딩(boarding)하기 어려울 듯 하다"고 말했더니 "걱정하지 마라. 늦는 게 당연하다"며 느릿느릿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하지만 발급된 티켓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컴퓨터 화면을 한참 쳐다보더니 티켓을 북북 찢어버리는 게 아닌가. 아마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발급된 모양이었다.

나는 앞줄에 섰기 때문에 그럭저럭 시간에 맞춰 탑승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뒤에 남은 일행들이 걱정됐다. 웬걸.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돌아와 보니 일행들이 일제히 들어와 탑승 게이트 창구에 줄을 서고 있었다. 일단 통과시킨 뒤 게이트 앞에서 좌석을 지정받으라고 했다는 것.

이래저래 라과디아행 항공기는 당초 예정보다 2시간 이상 늦게 출발했다. 늦게 도착한 데다 탑승절차마저 늘어졌기 때문. 결국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묵기로 한 뉴욕 호텔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어렵사리 연결...그러나 거북이 걸음

21일 토요일 새벽. 늦게 도착했지만 모두들 기사를 작성해 전송해야 하는 관계로 인터넷 접속을 서둘렀다. 뉴저지주에 위치한 메리어트 글렌포인트 호텔은 룸마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래서 예약했던 곳. 방으로 올라가기 전 "지금 연결설정 중이다. 한 5~10분만 기다리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는 말만 믿고 서둘러 룸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어지는 과정은 험난했고 분통 그 자체였다.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아 전화로 잇달아 문의했지만 "곧 기다려라"는 말만 메아리쳤다. 결국 대부분 기자들은 새벽 5~6시까지 마우스를 클릭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아침. 여전히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다. 호텔측은 "우리 서버에는 전혀 문제없다. 당신들 노트북 설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태도였다. 하지만 우연히 IT 관련 지식을 갖춘 현지 가이드를 만나 확인한 결과 호텔측 서버 문제가 명백했다. 일단 오전 일정을 지내면서 한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한 뒤 확인 결과 여전히 불통이었다. 결국 현대자동차측은 최후의 수를 쓰기로 했다. 호텔측에 "인터넷이 되는 호텔로 모두 옮기겠다. 그리고 투숙했던 요금도 낼 수 없고, 클레임을 걸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것. 그때서야 호텔측은 부랴부랴 움직였고 고객용 서버에 걸려 있던 '자물쇠(lock)'를 풀어줬다. 담당자를 제때 부르기만 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 무려 14시간이 넘게 지체된 뒤였다.

저녁에 들어와 연결해 보니 인터넷은 한없이 느렸다. 멀티 태스킹을 위해 3개 가량 창을 띄우자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 천천히 작동했다. 불만은 지속됐다. 특히 호텔측의 오만과 무사안일주의는 느린 인터넷보다 더욱 불쾌했다.

#터지지 않는 휴대폰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K씨(32)는 "뉴욕에선 휴대폰이 잘 안 터진다. 지하철에선 100% 먹통이다. 한국에 들어가 지하철에서 휴대폰이 울려 깜짝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대국 미국. 그것도 세계 자본시장의 심장으로 꼽히는 뉴욕에서 휴대폰 사용은 무척 어려웠다. 한번에 터지는 경우가 드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의아스러웠다. 특히 지하철에서는 아예 고철덩어리라니. 혹시 흑인, 황인종 등 유색인종이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한국에선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PC방. 그러나 뉴욕에선 PC방이 드물었다. 한인촌에선 PC방이 여럿 있었지만 다른 곳에선 한참 헤매야 했다. 터지지 않는 휴대폰, 이용손님이 드문 PC방... 미국 IT 산업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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