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글로리호 승선기] 파나마운하 지나 韓美이을 날씬한(?) 배

부산항 컨테이너 처리능력 최고수준
망망대해 나서는 외유내강형 바다사나이들
항구의 갯비린내는 바다가 육지사람을 맞는 일종의 환영인사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40%를 처리하는 부산항에 내렸을 때도 이 냄새가 났다.
바다 입장에서는 육지인들이 걸치고 온 풋내가 거슬릴 지도 모른다.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승용차가 신선대 터미널에 닿았다.
4일 오후 부두는 분주했다. 컨테이너선이 기항해 화물을 바꿔실을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설계된 이 지역 바닷가는 화물처리 속도 하나는 최고다. 수심이 초대형 선박을 맞는 국제적인 허브항이 되기에 충분치 않지만 화물 운영능력은 세계적이라 불릴만 하다.
이 항구는 2월에 한개 부두(크레인 7개)에서 한시간에 295개의 화물을 처리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보통 크레인 하나가 컨테이너를 배에서 내리는데 2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당 크레인 처리량 약 42개를 기록한 속도는 한계에 가까운 기술과 노하우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양산항이 거대한 규모와 물동량으로 부산항을 위협하고 있지만 스피드를 활용해 틈새를 공략한다면 아직 승산이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기대다.
신선대는 이 날 오후 수리를 마치고 태평양을 항해할 글로리호를 맞아 바쁘게 돌아갔다. 현대상선이 2004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이 배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4700개나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선. 거대한 몸뚱이를 육지에 잠시 기대고 휴식을 취하던 놈은 모양이 좀 독특하다.
길이가 294미터로 63빌딩(246미터)보다 48미터나 크지만 폭은 32.2미터에 불과하다. 현대상선 사람들의 설명을 듣자니 폭이 그보다 조금 더 큰 좁다란 파나마 운하(33미터)를 통과하기 위해서란다. 미주대륙을 남북으로 나누는 파나마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면 남미를 돌아갈 때 쓰는 기름값을 아낄 수 있다. 고유가시대를 맞아 미주항로를 개척하는데 적합한 배다.
고개를 치켜들고 바라보다 전체모습을 찍은 사진을 눈앞에 두니 진짜로 날씬해 뵌다. 눈가리고 코끼리 다리 만졌던 기분이다.
독자들의 PICK!

그래도 대형선은 대형선이다. 안전장치를 점검하고 수백대의 트럭들이 싣고 온 수출 컨테이너를 내리고 올리는데 밤을 꼬박 세웠다. 미국에서 가져온 과일과 냉동 고기들은 내리고 외화를 벌어들일 우리 공산품을 실었다. 빈컨테이너도 싣고 선적량도 조금 비웠다. 중국에서 채울 공간이다.
5일 아침이 밝았다. 글로리호를 바다로 데려갈 김성주 선장(55)이 23명의 마도로스를 불러세웠다. 바다사나이들의 거친 외모를 그렸던 예상은 빗나갔다. 우락부락한 모습은 없다. 캡틴부터 실습항해사까지 모두들 온유한 인상이다. 첨단 항법장치를 다루는 오늘의 해양인들은 외유내강형이다. 겉모습은 잔잔한 바다같은데 항해를 앞두고 보이는 집중력은 태풍이 몰아쳐 와도 정면으로 맞설만한 기세다.
현대상선의 배려를 얻어 이들의 항해모습을 중국 상하이까지 잠시나마 지켜보게 됐다.
"올 스테이션! 올 스탠바이!(All Station! All Stand by!) 출항을 알리는 김 선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선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비상대기를 시작한다. 미리 올라와 있는 도선사(파일럿)의 지휘에 따라 무선으로 전달되는 선장의 목소리에 승무원들이 한몸처럼 움직인다.
부산항을 천천히 벗어나 남해로 나가자 하늘이 높아지고 바닷빛이 시퍼렇게 물들기 시작했다. 부산 갈매기가 수출역군들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는지 한참을 배웅나왔다가 육지로 날개짓을 할 무렵, 주위에는 뭍이 사라졌다. 몸을 빙그르 돌려보아도 보이는 건 하늘과 바다의 경계 뿐이다.
망망대해(茫茫大海). '바다를 본 자, 물에 대해 함부러 얘기치 못한다'더니 상황에 딱 맞는 명언이다. 이 넓은 대해를 생활터전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3분의 1도 채 알지 못하는 반쪽인생을 사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