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가입? 그럼 런닝머신 5대만"

"퇴직연금 가입? 그럼 런닝머신 5대만"

임상연 기자
2009.10.27 16:13

수수료 인하, 골프, 콘도이용, 건강검진까지 출혈경쟁

#A증권사는 얼마 전 한 중견기업의 퇴직연금 유치를 위해 임직원들에게 콘도 이용권을 제공했다. 100일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이 콘도 이용권을 부가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 A증권사가 들인 돈은 1500~2000만원. 당시 A증권사가 유치한 퇴직연금 적립금은 270억원 정도로 여기서 발생하는 연간 수수료 수입은 6000만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퇴직연금 유치를 위해 연간 수입의 1/4 이상을 포기한 셈이다.

#최근 한 지방건설사는 B보험사에 회사내 스포츠센터를 건립하고 있다며 러닝머신 5대를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고민하던 B보험사는 결국 한 대당 200만원이 넘는 고가의 러닝머신을 구입해 건설사에 제공했고, 이 대가로 퇴직연금을 유치했다. 하지만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작아 러닝머신 구입비를 만회하는 데만 2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의 '블루오션'으로 통하는 퇴직연금시장이 은행, 증권, 보험 등 퇴직연금사업자간 출혈경쟁으로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있다. 퇴직연금사업자들이 고객유치를 위해 수수료 인하는 물론 과도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퇴직연금시장이 '배보다 배꼽이 큰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퇴직연금사업자들은 퇴직연금 유치를 위해 기업 CEO 및 재무담당 임원, 노조 등을 대상으로 한 골프접대는 기본이고 문화ㆍ체육행사비 지원, 콘도 이용권 제공, 종합건강검진 비용부담 등 고가의 부가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일부는 해당 기업의 물품을 구입해주거나 대리 판매하는 불법 판촉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에는 퇴직연금 가입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직접 퇴직연금사업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증권사 한 퇴직연금 담당임원은 "부가서비스 제공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면서 이제는 기업들이 먼저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혈경쟁으로 퇴직연금사업자의 운영 및 자산관리수수료는 이미 도입 초기보다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현재 퇴직연금 운용 및 자산관리수수료(DB, DC형 기준)는 적립금 규모에 따라 각각 0.1~0.6%, 0.2~0.4%에 불과하다. 권역별로는 증권사의 총 수수료가 0.2~0.6%로 가장 낮고, 이어 은행, 보험 순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퇴직연금사업자의 영업수지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 9월말 현재 등록된 퇴직연금사업자는 53개사로 퇴직연금시장 규모는 9조1047억원(적립금 기준)이다. 가장 높은 수수료율(총 1%)을 적용해도 업계 전체 연간 수수료 수입은 910억원 정도로 이를 퇴직연금사업자로 나눌 경우 한 회사당 연간 수입은 17억원에 그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 수수료 수입으로는 인건비도 못 채우는 회사가 많다"며 "일부 회사들은 퇴직연금 부문에서 몇 년간 적자가 지속되자 조직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사업자간 출혈경쟁은 결국 근로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소지가 큰 만큼 감독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관계자는 "현재 퇴직연금시장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변질된 상태로 자본력이 약한 중소형사들은 명암도 못 내민다"라며 "시장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선 건전한 영업환경이 시급히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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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연 미래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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