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40년](4)세계인의 휴대폰 '애니콜'

#1995년 3월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 2000여명의 삼성전자 직원이 '품질 확보'라는 머리띠를 두른 비장한 모습으로 속속 집결했다. 운동장 한편엔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고 쓴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운동장 한복판에는 15만대에 달하는 휴대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0여명의 직원이 휴대폰에 인정사정없이 해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박살난 제품들에 불까지 붙였다. 모두 500억원어치의 휴대폰이 이날 재가 됐다.
오늘날 세계시장에서 연간 2억대씩 팔려나가는 삼성전자 휴대폰 '애니콜'의 성장사에서 빠질 수 없는 그 유명한 '애니콜 화형식' 장면이다. 당시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고 하시오"라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불호령에 따라 불량 휴대폰들이 공개 화형에 처해졌다. 80년대 말만해도 불량제품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던 삼성 휴대폰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품질을 갖춘 제품으로 변신하기까지 삼성전자가 기울인 피나는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뺨맞게 한 80년대 삼성폰
우리나라 휴대폰시장은 198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셀룰러 방식의 아날로그 휴대폰을 이용한 카폰서비스를 상용화하면서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1986년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카폰 'SC-100'을 출시, 휴대폰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 발맞춰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휴대폰 'SH-100'까지 선보였다.
하지만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휴대폰시장은 모토로라를 비롯해 도시바, 교세라 등 외산업체들이 독점해 국산제품은 명함도 못내밀었다. 삼성전자가 'SH-100'에 이어 1993년 바타입의 'SH-300'을 내놓으며 의욕적으로 도전했지만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은 커졌고, 반품도 많았다. 심지어 'SH-300'을 판 대리점 사장은 불량제품을 팔았다며 고객에게 뺨을 얻어맞는 사건까지 일어났을 정도다.

'불량은 암이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질경영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삼성휴대폰=불량제품'이라는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삼성전자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세계 최고의 휴대폰으로 통하는 '애니콜'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특히 93년말 산이 많은 한국지형에 특화된 한국형 휴대폰 'SH-700'이 나오면서 '애니콜'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4년 들어 애니콜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그해 말 '애니콜'의 시장점유율은 30%대로 올라섰고, 1995년 7월 마침내 시장점유율 50%로 선두를 차지했다. 반면 외산폰의 시장점유율은 10% 수준으로 추락했다. 10년간 국내 휴대폰시장을 독식한 외산폰이 '애니콜'에 의해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프리미엄폰, 세계가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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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1996년 아날로그 방식을 벗어나 디지털 방식의 휴대폰을 독자 개발하겠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개인휴대통신(PCS)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7년부터 삼성전자는 수출에 나섰다.
통상 기업들이 수출을 처음 시도할 때는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저가전략을 펼치는 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와 반대로 처음 수출할 때부터 철저히 '프리미엄 전략'을 견지했다. 고가제품에 맞게 품질을 개선하는데 힘을 쏟아부었다. 이는 국내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이긴 경험과 가전제품을 수출하면서 수출에 대해 나름의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1996년 9월 미국 스프린트와 처음으로 휴대폰 수출계약을 했다. 같은해 홍콩 허치슨에도 CDMA 휴대폰을 수출했다. 미국 진출 첫해인 1997년 당시만해도 삼성 휴대폰을 알고 있는 미국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는 그 해에만 45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했다.
삼성전자는 1998년 10월 시판한 'SGH-600'을 통해 프리미엄 전략에 확신을 갖게 됐다. 당시 경쟁사보다 'SGH-600'의 가격을 10% 이상 높게 책정했지만 'SGH-600'은 9개월 동안 200만대나 팔렸다. 이후 삼성전자는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를 탑재, 세계시장에 컬러폰시대의 개막을 알린 'SGH-100'으로 첫 텐밀리어셀러(누적판매량 1000만대)를 탄생시키는 등 잇따라 메가히트폰을 내놓으며 세계적 휴대폰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멈추지 않는 혁신으로 정상에 '우뚝'
삼성전자 휴대폰사업의 올해 목표는 이른바 '트리플-투'다. 세계시장에서 2억대 이상의 휴대폰을 판매, 시장점유율 20% 이상을 달성하고 영업이익률 두자릿수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올해 세계 휴대폰시장이 역성장하면서 부동의 세계 1위 노키아도 3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등 글로벌 휴대폰업체들이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연초부터 공격적인 시장점유율 확대전략을 구사하며 나홀로 성장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면서 얼마전까지만해도 불가능으로 생각되던 휴대폰시장의 절대강자 노키아 추격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삼성 휴대폰이 이처럼 위기 속에서 오히려 강한 것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무수한 '세계 최초' 기록을 수립하며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왔기 때문.
90년대말 휴대폰시장에서 최경량·초슬림 기술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당시 삼성전자는 1998년 3월 세계 최초로 무게 100g의 벽을 깬 98g짜리 'SPH-4100'을 선보였고 이어 두달 만에 77g짜리 'SPH-6310'을 내놓아 경쟁사들의 기를 꺾었다. 또한 초슬림화 경쟁이 불붙은 당시에는 세계 최초로 두께 1㎝ 미만 제품인 'SHP-N2000'을 만들어냈다.
△손목시계형 휴대폰 'SPH-WP10' 개발(1999년) △세계 최초 TV폰 개발(1999년) △디지털카메라폰 'SCH-V200' 개발(2000년) △세계 최초 1000만화소 카메라폰 개발(2006년) 등 삼성전자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한 휴대폰으로 컨버전스 혁명도 주도해왔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왜 (키패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화 및 종료버튼이 불편하게 제일 하단에 있냐"고 지적하면서 삼성전자가 키패드 상단에 통화 및 종료버튼을 배치한 후 모든 휴대폰업체가 이를 따라했다는 일화는 삼성전자의 기술력과 혁신성이 업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전자는 올들어서는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를 탑재한 '아몰레드폰'을 앞세워 '휴대폰 화질경쟁'을 선도하며 세계 휴대폰시장에 또다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애니콜이 초기엔 실패도 많았지만 하나하나 극복하며 여기까지 왔고, 이는 최고위층의 관심과 전체 구성원의 열정이 한데 모였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다시 더 높은 곳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