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민 특허청 차장, "특허없던 애플이 삼성공격한 이유는?"

요즘 가장 빈번히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제이슈 중 하나는 글로벌 기업 간 특허분쟁일 것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소송이 대표적인 것으로, 이 소송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한국·일본·독일·영국·호주 등 9개 나라에서 국제적으로 치러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번 특허소송은 과거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특허소송에서, 애플은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아왔고 줄곧 고배를 마셔왔다. 그런 애플이 이번 삼성전자와의 특허소송에서는 오히려 선제공격을 감행했고, 일부에서는 상대방 제품의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과연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종전의 글로벌 기업 간 특허분쟁에서는 특허권이 유일한 무기였고 그 침해 여부가 승패를 갈랐다. 그래서 기업들은 특허권 확보에 열중했고, 이로써 자사 제품을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로 무장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애플은 열세에 있던 특허권 확보는 물론, 디자인권, 상표권 등 다른 지식재산권 확보에도 열을 올렸다. 이로써 애플은 특허권뿐만 아니라 디자인권, 상표권 등으로 짜여진 지식재산 포트폴리오로 자사 제품을 무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애플은 이번 삼성전자와의 소송에서 어떻게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는 애플이 지식재산 포트폴리오로 무장하고 이를 활용한 전략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특허 포트폴리오에는 없는 디자인권 등을 포함해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디자인권이나 상표권은 특허권과 마찬가지로 산업재산권의 일종이다.
디자인권이란 산업적 제품의 독창적이고 장식적인 외관 형상을 보호하는 권리이고, 상표권은 자사제품을 타사제품과 식별하는 상표를 보호하는 권리이다.
즉 자사제품을 보호하는 데에는 기술을 보호하는 특허권 외에도, 외관을 보호하는 디자인권 그리고 브랜드를 보호하는 상표권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특허권과 마찬가지로, 침해하면 생산과 판매를 금지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독점적·배타적 권리이다. 따라서 이런 권리들은 바로 지식재산 무기가 되어 특허분쟁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디자인권이나 상표권은 특허권 보다 소송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 소송의 승패를 가르는 권리침해 판단에 있어, 특허권은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하며, 최종 판단에 보통 3~4년 이상 소요되는 반면, 디자인권이나 상표권은 비교적 용이하게 판단할 수 있고 소요기간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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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디자인권이나 상표권 침해소송은 특허권 침해소송과 비교할 때, 상대방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시킬 수 있는 결과를 보다 쉽고 빠르게 얻어낼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는 것이다.
애플은 이런 유리한 점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애플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권뿐만 아니라 디자인권 등의 지식재산 포트폴리오를 무기로 삼아 공격했다.
이러한 소송 가운데 독일에서 애플의 디자인권에 대한 침해를 근거로 해당 삼성전자 제품의 생산 및 판매 금지가 가처분됐다.
더욱 놀라운 점은 가처분을 신청한지 불과 10일 만에 이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IT 분야와 같은 첨단업종은 제품개발 주기나 기술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신제품 판매금지는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이번 특허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과거의 특허권 위주의 분쟁이 이제는 다양한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분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무리 강한 육군이라도 단면적인 지상의 공격·방어만으로는 육해공군의 지상·해상·공중 등 다각적인 공격을 당해낼 수 없듯이, 특허권 위주의 단면적 소송전략은 특허권, 상표권, 디자인권 등의 다양한 지식재산권의 입체적 소송전략에 비해 약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변해가는 생태계 속에서 결국 생존하는 것은 끊임없이 적응하는 종이다.
즉, 변화무쌍한 지식재산 분쟁시대에서 생존하려면 기존의 특허 포트폴리오보다 더욱 다양하게 디자인권과 상표권 등을 포함한 지식재산 포트폴리오로 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