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네가 세계최초" 희한한 와이브로

[기자수첩] "네가 세계최초" 희한한 와이브로

이구순 기자
2006.06.27 09:24

“‘세계 첫 상용화’보다는 그저 일정에 맞춰 조용히 시작하겠습니다.”

“일정에 밀려 ‘세계 첫 상용화’라는 명예를 받기는 부담스럽죠.”

‘세계 처음’이라는 기록에 유독 민감한 IT업계에서 KT와 SK텔레콤이 명예를 서로 양보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통신업체들은 ‘세계 처음’이 되기 위해 경쟁회사의 일정까지 컨닝해 코앞에서 선수를 치는 ‘반칙’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와이브로(휴대인터넷)을 놓고는 완전 딴판이다. 애초 KT는 정부가 허용한 와이브로 상용화의 마지막 날인 6월30일을 상용화 날로 잡았다. SK텔레콤은 이보다 더 미룰 날짜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세계 첫 상용화를 떠맡게 됐다.

세계 IT시장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명예가 어느새 ‘짐’이 돼 버린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회사 모두 와이브로의 시장성을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관련 임원들은 “처음 시작해 보고 시장성이 안 보이면 바로 사업을 접을 계획”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런데도 정보통신부는 부랴부랴 일정 조정에 나서고 있다. KT가 하루라도 일정을 당기든지, 정 안될 경우 SK텔레콤과 동시에 상용화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 와이브로라면 KT가 앞장서는게 제대로 ‘폼’이 난다는게 정통부의 생각이다.

사업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시장에서 정통부의 욕심이 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세계 첫 상용화가 10년 이상 정통부의 명예를 지켜주고 있으니 노릴만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전국민이 일제히 휴대폰을 바꾸는 CDMA 도입 당시의 서비스는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런데도 정통부는 상용서비스 개시 일정까지 맞춰 놓고 6개월마다 투자상황을 검사하고 강제한다. 7월 1일에 와이브로가 상용화 되면 어떤가? 한두달 늦어지더라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내놓고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통신선진국의 명예 아닐까.

장관이 국제회의를 하는 도중에 서비스가 다운되는 수준, 서울의 몇몇 동네에서조차 제대로 요금을 받을 수 없는 서비스를 날짜에 맞춰 내놓고 ‘세계 처음’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통신 업체 스스로도 낯 뜨겁다는게 세계 첫 상용화에 ‘손사래’를 치는 통신업체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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