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자통법과 리스크관리능력

[광화문]자통법과 리스크관리능력

홍찬선 기자
2007.04.19 08:35

주식회사는 인류의 위대한 창조물 중 하나다. 돈이 한 푼도 없는 젊은이라도 참신한 아이디어와 정열이 있으면 사업의 꿈을 이룰 수 있다. 돈을 댄 부자들의 손해는 최악의 경우에라도 출자금만으로 한정되는 반면 이익은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 17세기 초에 주식회사 제도를 창안한 네덜란드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대항해시대’에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

미국은 증권거래소를 만들어낸 덕분으로 20세기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 주식을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는 ‘주식회사 유동화’를 통해 전기 철도 자동차 등 거액이 들어가는 20세기 초의 첨단산업 투자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와 20~21세기 미국이 패권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리스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런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라는 독창적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 패권국의 선물을 제공한 것이다.

반면 리스크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리스크 관리방법을 알지 못한 나라는 망국(亡國)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19~20세기에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1997년 여름부터 겨울에 걸쳐 불어 닥쳤던 동아시아 금융위기도 리스크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비롯된 비극이었다.

한국도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경제주권을 IMF(국제통화기금)에 넘겨줘야 했던 1997년의 외환위기는 리스크가 무엇인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일어났다.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는 ‘하이 리턴-하이 리스크’의 법칙을 알지 못하고 높은 이익만을 보고 동남아시아 및 러시아 채권에 투자했다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2003년의 카드대란과 최근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동산 담보대출은 리스크를 무작정 피하려다 오히려 리스크를 키운 것이다.

21세기 경쟁력의 원천은 리스크 관리능력에 있다. 비즈니스에 따르는 리스크의 가격을 정확히 계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회사는 그렇지 못한 사람과 회사를 회생양으로 삼아 엄청난 이익을 올린다. 나아가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는 그런 능력을 갖춘 나라에게 지배당한다.

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한국 금융회사들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영국과 일본 등이 이미 금융시장 통합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여유가 없다.

하지만 자통법은 투자금융회사에 지급결제기능을 주는 문제로 표류하고 있다. ‘총론 찬성-각론 반대’라는 고질적인 ‘밥그릇 논리’ 때문에 자통법 시행이 자꾸 늦어지고 있다. 자통법 적용을 받는 투자금융회사에 지급결제기능의 일부를 주는 문제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 시각이 아니라 금융서비스 소비자인 고객의 편의제고와 한국의 자본시장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봐야 풀린다.

투금사에 지급결제기능을 주면 은행 보통예금 중 20조 원 가량이 투금사로 이동할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투금사 CMA가 은행 보통예금보다 금리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은행으로선 손해일 것이나 소비자에겐 득이다.

리스크 관리능력을 높이기 위한 자통법이, 예상되는 리스크 때문에 표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밥그릇 논리에 빠져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변화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생존의 법칙에 어긋난다. 큰 틀을 먼저 정한 뒤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해결방안은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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