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의사 김수균의 모발이야기⑤
가발 탈출의 숙제를 안고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후배가 던진 한마디는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나 마찬가지였다. '김00 교수님이라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 대머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소식에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교수님은 임상의학을 하신 게 아니고 생화학 교실의 주임교수인 것으로 기억됐다. 그 선생님이 모발이식을 한다니 긴가민가 싶기도 하고 뭔가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피부과 후배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야! 그 교수님은 임상도 아니고 생화학에 계시잖아?” 그러니까 후배가 하는 말이 “원래 암을 연구하셨는데, 암환자에게 항암제 치료를 하다보면 머리털이 다 빠지는 걸 보고 머리털 연구를 하시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본격적으로 머리털 연구를 하려고 해도 본인의 생머리털을 제공해 주려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그래서 모발이식을 생각했는데 여차저차해서 지금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게 후배의 말이었다.
바로 그 교수님께 전화를 했다. 안동의료원에 있는 누구라고 하고 한번 찾아뵙겠다고….
그리고 며칠뒤에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가발을 벗으니 교수님께서 좀 뜨악해했다. 그리고는 슬슬 빼는 눈치신데, 당장은 시간이 안 되겠고 나중에 연락줄 테니 그 때 하자고 하셨다. 나는 한 시가 급한데!
생님이 먼저 연락을 주시겠다고 해서 기다리는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도대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머리 빠진 사람들이 다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다들 좀 성마른 편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나는 별나게 성격이 급한 편이어서 무언가 한번 결정하면 후다닥 해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게 3~4개월을 보내다보니 애간장이 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례를 무릅쓰고 먼저 전화를 드렸다. 그렇게 한번 전화를 시작하고부터는 일주일에 2~3번씩 시간 날 때마다 조르기 시작하니 선생님도 견디다 못해 6개월 만에 승락을 하셨다.
그런데 수술을 할 곳을 나보고 알아보라고 하셨다. 수소문 끝에 대구적십자 병원에 계신 외과 의국 4년 선배에게 연락이 닿았다. 거기에 부탁해서 수술실에 간호사까지 섭외해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시간은 약 4시간 정도. 아마 지금 내 경험으로 보면 1천개 심었을까 말까 하는 정도였다. 어찌됐든 수술을 마치고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하고 안동으로 내려왔다.
독자들의 PICK
지금 290명 읽는 중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 머리를 심었다고 그대로 생착해서 금방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한 3개월 정도에 걸쳐 서서히 빠지고 다시 또 빠진 자리에 새로운 머리가 올라오려면 일정 기간 경과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완전한 식모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한동안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때도 가발을 쓰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주변 사람들은 알 턱이 없었고 나 또한 크게 신경쓰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발을 쓰고 있자니 머리 만지러 한 번씩 대구에 가야 했는데 그게 귀찮아서 안동에 있는 단골 이발관에서 주로 이발을 했다. 수술 받고 10달 쯤 땠을 때인데 이발소 사장님이 이발을 하고 드라이를 해 주면서 “이제 가발 벗으시죠!” 라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