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참 폼 나게 쓰는 사람"

"돈을 참 폼 나게 쓰는 사람"

배현정 기자
2007.11.10 15:43

[머니위크]사회복지법인 중부재단 이혜원 이사장

옛날 한 임금님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지침을 만들고자 했다.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불러 한 질 분량의 책을 편찬했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인지 백성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임금님은 한 권 분량으로 요약하라고 학자들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최후에는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학자들이 내놓은 명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었다.

"박장대소했죠.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인데 어찌보면 농담같으면서도 되새길수록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았어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도 사실 그리 특별한 게 아니지요. 지금까지 받은 혜택만큼 돌려주는 것 아닐까요?”

사회복지법인 중부재단의 이혜원 이사장은 이렇게 선문답 같은 이야기로 삶의 철학을 설명했다. 만일 '헌신'이나 '희생' 등의 관점에서 천사표 사회사업가를 예상한다면 다소 기대와 어긋날 수 있지만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한 사회사업의 바람직한 모델을 세워나가고 있다.

그는 김항덕 중부도시가스 회장(전 ㈜ SK 대표이사 및 SK그룹 부회장)의 부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만을 주목해 부유한 사람들의 선심성 자선사업이라고 치부한다면 지극히 외형만 보는 셈이다.

"대한적십자사에서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으로 한 10여 년을 몸담았어요. 그러면서 더 나이가 들면 뭐할까 생각하다 '사회봉사'로 길을 정했지요. 그런데 막상 하려고 보니 막막했어요."

고민 끝에 오십줄에 학교(이대 사회복지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학교에 가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데 대학(이대 가정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되서 수학능력이 있을까 확신이 안 들더라고요."

우선 정식과정이 아닌, 연구과정을 1년 밟았다. 이후 정식 입학, 만 3년(재단 설립 준비로 1학기 휴학)을 채우고서야 졸업한 것이 바로 지난해 2월이었다. "복지 기관이 어떤 곳인지 미리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여러 복지 분야 중 그의 갈길도 그때 정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을 직접 돕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제 길은 아닌 것 같았어요. 이보다는 재단을 통해 지역사회를 돕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필요한 곳에 지원을 해야겠다 결심했죠."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금을 형성해야 했다. 남편인 김 회장은 흔쾌히 거액의 기금을 지원했다. 건립 기금으로 무려 30억원. 이후에도 매년 중부도시가스로부터 2004년 3억원, 2005년 4억원, 2006년 5억5000만원, 2007년 7억원등을 지원받고 있다.

"요즘이야 기업의 사회환원을 많이들 얘기하지만 몇 년전만 해도 그리 부각되지 않던 때였어요. 또 기업의 활동과 연관된 기업 차원 재단이 아니란 점도 중부재단의 차별점이죠. 순수한 민간차원의 재단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니까요."

그가 자랑하는 것도 이러한 중부재단만의 특화된 전문 사업들이다. "중부재단은 복지사 4인이 끌어가는 아주 작지만 전문성은 강한 재단이에요. 소외된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하고 있죠."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가 사회복지 실무자를 위한 안식월 지원사업. 현장의 사업복지사들에게 한 달간의 휴식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다(해당 기관과의 협의하에 인건비 및 쉼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정작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실정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됐다.

“복지사들에게 인기가 대단해요. 사회복지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계속 일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고요."

흔히 ‘음지에서 일하는 천사’로 일컬어지는 사회복지사들 사이엔 ‘번아웃(burnout)’(극도의 피로감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소모, 열정의 쇠진 등을 의미하는 말)이라는 말이 자주 쓰일 정도로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년 봄 안식월 지원사업에 대한 평가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인데 벌써부터 게시판 등에서는 뜨거운 호응을 읽을 수 있다. "사회복지의 길을 선택한 후 마음 편히 처음으로 쉼을 얻었어요", "쉼 후 직장과 가정에서 더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등 감사 글이 줄을 잇는다.

김 회장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국제 결혼 가정을 위한 지원 사업도 특색있다.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신부들에게 지원 혜택을 줄 뿐 아니라 이들이 지역사회 '방과 후 학교' 등에서 외국어 교사로 설 수 있게끔 해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장학사업, 의료지원사업, 환경문화사업, 지역사회복지사업 등 다양한 분야의 선진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전문성을 인정 받아 지난 4월부터는 충남 아산시 음봉산동 종합사회복지관의 위탁운영도 맡고 있다.

“솔직히 어떤 때는 스스로 제 발에 족쇄를 채운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좋은 일' 한다고 항상 뿌듯한 것도 기쁜 것도 아니거든요. 하지만 대개의 직장인들이 좋아도 싫어도 일해야 하는 것처럼 제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현재 재단 일(회계 부문 등)을 돕는 외동딸을 사회복지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복지프로그램 진행에 있어서는 철저히 배제시킬 정도로 복지사업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만일 아이들이 향후 재단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반드시 전문적인 지식 습득을 전제로 할 것"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그는 사회복지법인을 이끌어 가는 것에 대해 ‘사회에 대한 약속’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는 복지법인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기틀을 잡아놓고 가는 것이 환갑을 바라보는 그의 남겨진 임무라고 했다.

이러한 그를 두고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고인숙 회장은 “돈을 참 폼 나게 쓰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그는 농담조로 웃으며 화답한다. "복지법인을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으려면 뭐하러 합니까. 늘그막에 운동이나 다니지..."

마지막으로 사회복지법인 운영자로서의 바람을 물었더니 '민간 복지재단의 활성화'를 꼽았다. "이제 기업의 기부문화는 어느 정도 활성화됐는데 아직 민간 차원으로는 멀었어요. 개인의 사회공헌은 불모지나 다름없죠."

기업마다 사회공헌 부르짖지만 정작 '내 주머니 돈' 꺼내는 데 인색한 우리 사회 부자들을 꼬집는 일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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