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나라당의 反헌법적 몽니

[기자수첩]한나라당의 反헌법적 몽니

이상배 기자
2007.12.04 16:32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어기고 예산안 처리를 미뤄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게 문제다." 예산당국 수장인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의 넋두리다.

일반 법률도 아니고, 하물며 헌법을 어겼는데도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헌법을 위반했는데도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 54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확정된 예산안을 토대로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가 차기연도 세부 예산안을 짜는 데 최소 30일의 시간은 줘야 한다는 취지다.

그 '30일 전'이 올해는 지난 2일이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은 여전히 미처리 상태다.

하루 이틀된 일도 아니다. 매년 말이면 으레 국회는 헌법상 예산안 처리 기한을 넘기고, 정부는 국회의 조속한 예산 처리를 촉구한다. 이때 쯤 언론에서도 국회의 방만한 예산 심사를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국회는 12월말 쯤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반복된다. 최소한 "예년에 그랬듯 연내에는 처리하겠지"라는 신뢰(?)는 주는 국회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곧 대선이고, 대선이 끝나면 곧장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살다시피하는 의정보고 기간이다. 장 장관이 "올해는 연내 예산안 처리를 자신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다.

예산안 처리 지연의 이유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는 정당 간 의견차이로 처리가 늦어졌지만 올해는 한나라당, 한 정당에 원인이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예산안 심의를 미루고 있다. "대선을 치른 뒤 12월말 임시국회를 열어 새 대통령의 의사도 반영해 예산안을 처리하자"는 입장이라고 한다. "정권교체는 기정사실"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예산을 집행할 정부가 예산 편성권을 행사하겠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안을 편성해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한다"는 헌법 규정은 내년도 예산안의 편성권이 엄연히 현 정부에 있음을 말해준다.

한나라당은 대권이 '헌법'보다도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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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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