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MB의 칼

[기자수첩]MB의 칼

최중혁 기자
2008.05.14 09:20

"내가 오만과 독선, 혹은 아집 때문에 그릇된 결정을 하려 든다면 그 결정을 베어줄 칼로 그대를 쓰고 싶습니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대왕세종'의 한 구절이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말이겠지만 명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왕조시대 군주의 마음가짐이 이러해야 할 진대, 인류 역사상 가장 앞선 정치제도라는 민주주의의 시대에서 대통령의 마인드가 이러한 지 의문스러운 것은 왜일까.

얼마 전 만난 한 사설연구원의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 "건설사 사장이 경쟁사 몰래 알맹이 땅 선점하듯이 일을 추진한다"고 혹평했다.

반대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결론을 미리 내린 핵심 측근 몇 명이 비공개적으로 일을 도모하는 데 대한 비판이었다. 실제로 MB정부가 지난 몇 개월 동안 국가 운명을 좌우할 주요 정책들을 추진하는 방식을 보면 '아예 의견수렴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공기업 개혁만 해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공기업 지배구조 개선뿐만 아니라 사회공공성 확보도 분명히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로지 '민영화만이 답'이라는 효율성 지상주의 논리만 펴고 있다.

정책 파트너라는 한국노총에도 일언반구 협의가 없었는데 다른 단체야 두 말해 무엇 할까. 이 같은 국정운영 방식은 '대운하', '학교자율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정권 입장에서는 노동·교육·시민단체가 '안된다'고 떼만 쓰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화가 안통할 것 같은 이들마저 설득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라 할 것이다. 설득시킬 만한 숫자나 데이터도 없이 '무조건 믿고 따르라'고 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 아집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청와대 참모들 또한 자신이 어떤 '칼'인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이들은 민심을 제대로 예상치 못했고, 또 사태가 커졌을 때 수습하는 능력도 보여주질 못했다. 대통령이 "시련을 겪으면 더 강해지는 게 있다"며 인적쇄신론을 물리쳤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성난 민심을 기독교식 시련 마인드로 접근하시니 말로만 국민의 뜻을 살핀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라고 고언할 정도는 돼야 정적을 베는 칼이 아닌, 나라를 위한 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