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올림픽 얘기는 한번 하고 지나가야겠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우리에게 4년의 변화를 실감케했다. 확실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우선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것처럼 메달을 따는 종목들이 바뀌었고 다양해졌다. 권투 레스링 등에서는 금메달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은메달과 동메달 숫자도 금메달과 비슷한 숫자를 따냈고, 그에 못지않게 상당한 의미를 부여받는 분위기도 큰 변화중 하나다. 은메달 동메달을 받으면서 웃을 수 있게 됐고, 많은 국민이 기쁜 마음으로 시상식을 지켜볼 수 있었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카메라는 시간을 할애했다.
더 큰 변화는 내용이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메달을 따낸 스토리가 잔잔하고, 우리 삶에 가까운 이야기여서 좋다. 어려서부터 뭐든 잘하고 남달랐다는 식의 위인전 줄거리 방식이 아니다. 역도가 싫었고, 역도선수라는 것을 감추고 싶었던 여자 선수가 부모님께 감사의 말씀을 했다. 역도하기에 좋은 몸을 주신 것에 대해. 비만을 해결하기 위해 우연찮게 배드맨턴 채를 들었던 선수가 금메달을 따냈다.
이제 그들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이용대 선수의 윙크 한방에 동네 배드맨턴 장이 북적대고, 박태환 선수 때문에 수영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장미란, 윤진희 선수 등 여자 역도선수들의 인기가 높은 것도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헬스클럽의 구석에 자리잡은 역기를 한번 들어올려보고 싶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남달랐던 것은 이런 변화들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리가 청산하지 못한 숙제도 있었다. 그 숙제는 '핑계강화 심리'로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패배의 구실이 될만한 꼬투리를 잡고, 그 꼬투리를 강화하고 싶은 약자의 마음 말이다.
핸드볼 준결승 후반전, 종료시간이 가까워올수록 심판은 상대편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 해설이 자꾸 TV를 통해 흘러나왔고, 심판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동점골 이후 터진 상대편의 골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정식 이의신청도 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맹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또 편파판정의 희생양이 됐다. 3,4위전에 보란듯이 승리, 동메달을 목에 걸어서 천만다행이다. 편파 논란이 희석됐기 때문이다.
야구에서는 더 그랬다. 결승전 9회말 1사후 갑자기 심판이 쿠바편으로 돌아섰다. 심판의 국적이 쿠바와 가깝다는 지적도 나왔다. 급기야 포수가 볼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다 퇴장명령을 당했다. 포수는 마스크와 글러브를 땅에 내던지며 덕아웃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중계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의 속이 다 시원할 정도였다.
독자들의 PICK!
오심여부를 떠나 1사 만루라는 막다른 상황이 이를 촉발시켰을 것이다. 그때 경기를 포기했다면 우리는 핸드볼보다 훨씬 큰 핑계를 간직할 뻔 했다. 냉철한 행동으로 승리를 이끌어준 감독과 선수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다.
우리에게는 유독 편파판정이 많다. 우리 사회가 워낙에 제대로된 심판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학습된 심리일 수도 있다. 피해의식의 발로다. 그래도 태권도에서 심판의 판정에 불복, 심판에 발차기를 하는 수준은 아니다. 4년뒤엔 우리에게 편파판정이라는 핑계가 좀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