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원칙'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광화문]'원칙'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이기형 기자
2008.09.24 09:59

메릴린치, 리먼 브라더스 등 미국 투자은행(IB)의 몰락을 보면서 '세상에 참 영원한 게 없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된다.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던 거대 금융회사가 하루아침에 한국에까지 손을 벌리게 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시장의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전문가인양 매일 떠들어대지만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이러다가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송하비결의 예언이 맞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위기를 통해 적어도 아시아가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위치를 점하게 되리라는 것은 실제로 가능한 시나리오 같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쌓아놓느냐'고 질타받던 아시아 주요국들의 외환보유고가 이렇게 든든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은행창구에 펀드 투자자들이 몰려들 때 '나는 몰라유~'하며 그냥 적금이나 들던 '미련 곰탱이'들이 발을 쭉 뻗고 잘 줄 누가 알아겠는가.

이번 일을 통해 '선진금융기법=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한 비뇨기과 의사의 '성교육은 성테크닉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성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선진금융기법이란 화려한 테크닉이 아니라는 얘기다.

넘치면 탈이 나게 돼 있다. 그들은 원칙에서 벗어난 투자를 했고, 그러다 탈이 난 것이다. 갖가지 금융기법 동원, 레버리지를 통해 투자대비 수익률을 높이면서 위험을 증폭시켰고,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던 것이다. 세계시장을 지배하던 그들에겐 '유동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름만 내걸면 돈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가지고, 너무 폼을 잡은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장이 참 무섭다.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거대 금융사에게도 예외없이 책임을 물으니 말이다.

최근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 추진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논란을 벌였다. 이 기회에 선진금융기법을 가진 리먼 같은 회사를 단박에 인수, 세계의 중심으로 가자는 쪽도 있고,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리먼 재직시 받은 스톡옵션 때문에 리먼을 인수하려고 했다는 공방이다. 딱 우리 수준에 맞는 논란이다.

얼마전 한 국회의원은 국민연금이 미국 최대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와 프래디맥 주식에 500억원을 투자해 손실을 보게됐다는 자료를 냈다. 국민연금의 자산규모는 229조원이다. 세계 국부펀드중 일본, 노르웨이 다음으로 크다. 올들어 증시가 하락하자 국민연금 주식투자 평가손실이 얼마라는 국감자료도 나왔다. 깨질 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다. 물론 장기투자 운운하던 언론들도 덩달아 대서특필했다.

이런 풍토에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리먼을 인수하겠다고 덤벼든 것이다. 이게 산은의 잘못이다. 국제시장에서 산은의 수준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 수준이 아니다. 이 또한 분수를 모르는 것이고, 그러다가는 탈이 나게 돼 있었다. 책임지는 오너가 없는 산은이 나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 딜은 산은이 책임질 수 있는 영역 밖이다.

어느쪽이 옳은지는 가치판단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위치를 알고, 분수에 맞게 투자하는 게 아닐까. 불현듯 '원칙(=선진금융기법)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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