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천리였다. 중대 사안을 놓고 마냥 '힘겨루기'를 했던 정치권의 옛모습은 없었다. 정부의 은행 대외채무 보증 동의안을 놓고서다.
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기도 전에 여야는 조속한 처리를 합의했다. 말 그대로 초당적 협력이었다. 야당 내부에서 얻은 것 없이 쉽게 동의해줬다는 불만이 나왔을 정도였다.
이같은 정치권의 발빠른 행보는 반갑다. 금융위기의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는 때여서 더 그렇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 의회가 제 때 구제금융안을 처리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면 우리 정치권의 대처는 자못 대견하다.
헌데 뭔가 개운치 않다. 정부와 집권 여당의 모습 때문이다. 우선 동의안을 들고 온 정부의 태도가 너무 당당하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빨리 처리해 달라"는 식이다. 머리는 좀체 숙이지 않는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구제법안 통과를 위해 15일 동안 14차례 회견과 연설을 했다", "미국 재무장관이 낸시 팰로시 하원의장에게 무릎을 꿇고 통과시켜 달라고 했다"는 지적이 나와도 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해버렸다.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설명하겠다"(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는 게 전부다.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는 말은 없다.
여당도 이런 정부의 태도를 두둔한다. 이면엔 현 정부의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정파적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는 우리 국민은 더 억울하다. 빚보증의 위험성을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국민은 힘들다.
동의안 조기 처리 합의 후 집권 여당 대변인은 야당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좀체 듣기 힘든 칭찬 논평이었다. 반면 국민을 향해선 한마디도 없었다. 감사의 대상은 여당도, 야당도, 정부도 아닌 빚보증을 서게 되는 국민인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