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소수, 회사를 말아먹다

잘 나가던 소수, 회사를 말아먹다

최남수 MTN 보도본부장
2009.08.17 19:55

[MTN 세상 그리고 우리는]

지난해 9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 미국에서 일어납니다.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AIG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로 인한 대규모 손실로 휘청거리다 미 정부로부터 850억 원의 구제 금융을 제공받습니다. 대신 미 정부가 AIG 지분 80%를 확보해 이 회사는 국유화됩니다.

거함 AIG를 침몰시킨 주역들은 누구였을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한 때 이 회사에 엄청난 수익을 올려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런던에 위치한 금융상품사무소로 백여 명 남짓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던 이들은 AIG에게는 신데렐라같은 존재였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비롯한 다양한 채권을 한 데 묶어 부채 담보부 증권 CDO라는 새로운 히트 상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은 기세를 이어가 CDO안에 편입된 채권이 부도가 날 경우 AIG가 돈을 대신 내주는 조건의 신종 보험상품 크레딧 디폴트 스왚을 만들어 냈습니다. 돈을 대신 갚아줄 가능성이 적다고 본 거지요.

연달아 빅 히트상품을 내놓은 결과 AIG 런던 금융상품 사무소의 매출은 불과 5년 만에 약 7억 4천만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 30억 달러는 회사 전체 수익의 17.5%를 차지했으니 백여 명의 런던전사들에 쏟아 졌을 찬사는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상황은 어이없게 반전됩니다. 부채 담보부 증권 안에 편입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등이 연이어 부도가 나면서 AIG가 대신 갚아줄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이 때문에 250억 달러의 손실이 순식간에 발생합니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보다 훨씬 많은 손실이 나 회사 전체가 급전직하의 위기로 치닫게 된 겁니다. 불과 백여 명이 전 세계적으로 12만명이 일하는 AIG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표면상으론 금융상품사무소의 실책으로 볼 일이지요. 하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회사측의 책임이 큽니다. 우수한 성과를 낸 금융상품 개발 직원들을 과신한 나머지 신상품인 CDS가 가져올 수 있는 치명적 위험에 대해 회사 경영진이 무지했고 이게 재앙을 가져온 겁니다.

영국 기업 역사상 최악의 손실을 기록하며 몰락의 길에 들어섰던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RBS는 어떻습니까? 2007년에 어렵게 인수한 투자은행 ABN암로가 부실덩어리인 것으로 밝혀진데다 서브프라임 투자 손실마저 발생해 결국 영국정부로부터 긴급 자금수혈을 받게 됩니다. RBS의 부실 경영에 관련된 임직원은 천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의 실수 때문에 16만 9천명에 이르는 전 세계 임직원들의 직장생활에 큰 주름살이 지게 된 사례였습니다.

소수의 실수가 전체 직장을 뒤흔든 극단적인 사례가 영화화된 경우도 있지요. 원어로는 악덕 주식 중개업자를 뜻하는 Rogue Trader, 우리말로는 갬블이라는 제목으로 소개가 됐지요.

이 영화는 승승장구하던 주식중개인 닉리슨이 파생상품 거래 손실로 결국 영국계 주요 민간은행 베어링의 문을 닫게 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베어링스 은행의 파산사태 또한 이익의 5분 1까지 벌어준 우수사원 닉 리슨을 회사측이 과신한 나머지 동시에 맡겨서는 안 될 주식중개와 거래 결제 업무 권한을 한꺼번에 몰아준 내부 감독 체제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은 한때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잘 나가던 일부 매출관련 부서나 직원이 견제 받지 않은 권한 때문에 회사 전체를 커다란 곤경을 빠뜨린 사례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이같은 일들이 말해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기업이든 정부든 정당이든 모든 조직에는 적절한 견제와 균형 장치가 있어야 그 조직의 건강성은 물론 생존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성과를 올렸다고 견제의 제동장치마저 풀어 버리면 도덕적 해이가 생겨 그 개인이나 단위 부서는 물론 조직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파멸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역사적 사례들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