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런 FRB vs 과묵한 한국은행

수다스런 FRB vs 과묵한 한국은행

최남수 MTN 보도본부장
2009.08.03 17:48

[MTN 세상 그리고 우리는]

얼마 전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세계 중앙은행 총재의 업무 실적에 대해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의장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고 2위에는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올랐습니다.

버냉키 의장과 트리셰 총재가 양호한 평가를 받은 것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불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통화 공급을 크게 늘리는 등 적절한 정책을 적시에 시행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사람은 특히 금융 시장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어 온 점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20일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버냉키 FRB 의장의 기고문이 실렸습니다. 풀린 돈을 중앙은행이 언제 걷어 들일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버냉키의 의장의 기고문은 시장과 소통하고자 하는 FRB의 의지를 밝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글에서 버냉키 의장은 많은 풀린 돈 때문에 물가가 올라도 FRB는 충분히 이에 대비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더 나아가 아예 채권매각 등 돈을 시중에서 빨아들일 수 있는 네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수단까지 제시했습니다. 버냉키는 '물가 물가 그러는 데 출구전략은 저를 믿고 걱정하지 마십시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어떻습니까? 지난해 11월 파이낸셜 타임스지에 경기부양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돈을 푸는 게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시장에 전한 거지요.

두 사람 다 대단한 소통 노력을 보인 겁니다. 월례 회의 후 기자회견도 아니고 신문 기고문을 낸 거 자체가 우리에게는 파격으로 보입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요. 한은 총재가 언론에 기고문을 싣고 현재 진행형의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는 것. 참 바람직한 일일 것 같은 데 한은 스스로가 이런 방식으로 시장과 소통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은 총재는 언론 노출 빈도를 최대한 줄이는 성역으로 남아있는 모습입니다.

정부 또한 조율되지 않은 한은 총재의 의견이 언론을 통해 수시로 노출되는 데 대해 속내가 편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 후 있는 한은 총재의 기자회견에서 '소통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국민이나 시장입장에서 보면 한국은행에서 나오는 정보의 양이 너무 적은 겁니다. 한은이 말에 너무 인색한 거지요.

사실 버냉키와 트리셰 두 사람의 소통 노력은 앞에서 말씀 드린 기고문에만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트리셰 총재는 지난달 19일 프랑스 국영방송 LCI와의 인터뷰에서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적자를 줄 일 것을 촉구했습니다.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에 대해 중앙은행 총재가 소위 언론 플레이를 통해 제동을 걸고 나선 것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미국에서는 특유의 의회시스템 덕분이지는 하지만 버냉키의장이 수시로 미 상원 청문회에 불려 나가 통화정책의 방향에 대해 의원들과 질의 응답을 갖습니다. 지난달 22일 청문회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부실이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버냉키도 버냉키지만 전임자인 그린스펀은 어떻습니까? 금융위기 책임론 탓에 스타일을 구기기는 했지만 오랜 재임기간 중 알듯 말듯한 비유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암시하는 등 시장에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래서 국민과 시장은 '지금 중앙은행 총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중앙은행이 경제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지'를 알거나 추측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을 나름대로 예측해 지출, 저축, 투자, 자산운용 계획 등을 수시로 현실에 맞춰 조정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은 사원으로 비유될 때가 있습니다. 정치권의 외풍에서 떨어져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독립성과 침묵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판단에 왜곡되지 않는 독립적, 객관적 의사결정을 하되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자, 이제 이성태 한은총재에게 중요한 건의를 드리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자주 시장과 소통하십시오. 그게 기고문이든 수시 언론 인터뷰이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통화정책이 경제와 국민생활에 주는 지대한 영향을 감안할 때 한 달에 한 번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한 한은의 진단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 지, 통화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운용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정부 정책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해 수시로 국민과, 시장과 소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랬을 때 한은에 대한 시장과 국민의 신뢰도 더 높아지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도 커질 것입니다. 말을 아끼는 건 신비주의를 키울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중앙은행의 진정한 리더십을 키우지는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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