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착한동생, DJ도 잊혀지겠지…"

"내 착한동생, DJ도 잊혀지겠지…"

김겨울 기자
2009.08.20 15:16

[단독인터뷰-下]친누나 김안례 여사, 80년전 기억 회상

고 김대중 전대통령 친누나 김안례 여사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고 김대중 전대통령 친누나 김안례 여사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까지도 따르게 하는 비범함이 있었다고 친누나인 김안례 여사는 회상했다. 김 여사는 "어린 나이인데도 워낙 똑똑하고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 문제도 곧잘 해결했다"며 "누나이지만 본받을 점이 많은 동생이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는 달랐다. 신안 하의도 부농이던 아버지 김운식씨는 첫 부인과 사이에 김 여사를 포함한 1남2녀를, 둘째 부인과 사이에 김 전 대통령을 포함해 3남2녀를 뒀다.

"그 때는 다들 그랬어.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고. 첫째 부인은 큰 어머니, 둘째 부인은 둘째 어머니라고 불렀지. 그런데 대중이가 나한테 '우리는 같은 아버지한테 낳은 같은 자식인데 큰 어머니, 둘째 어머니가 뭐냐. 난 두 분 다 어머니라고 부르겠다. 누나도 그렇게 해라'라고 했지. 그 때 참 나보다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때가 김 전 대통령이 고작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고 김 여사는 회상했다.

이후 공부를 잘했던 김 전 대통령은 목포에 여관까지 얻어가며 학업을 이어갔다. 김 여사는 그 사이 출가를 해 신안군 도초도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다.

"목포에서 공부하다가 장사도 하다가 정치에 관심이 간다고 하더라고. 섬에 있다가 넓은 곳으로 나가니까 아무래도 듣고 보는 것도 많았을 테니까." 이후 김 전 대통령은 어머니의 고향인 장산에서 정치적 스승을 만난 뒤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고생, 고생 그런 고생을 또 했을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잖아. 일본 납치 때 아버지가 화병으로 돌아가셨어." 김 여사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당시가 기억이 나 고통스러운 듯 말을 멈춘 채 창문 밖 먼 곳을 바라봤다.

1973년 김 전 대통령은 일본 도쿄에서 괴한들로 가장한 중앙정보부원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당시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목숨을 살린 그의 소식에 김 전 대통령의 부친은 결국 혈압이 높아져 쓰러졌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김 여사는 전했다.

"대중이는 (아버지) 장례식에도 못 왔지. 홍일이가 왔는데 조문하고 가는 도중에 갑자기 교통사고가 난 거야. 할아버지 장례식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말이지. 그 때부터 홍일이가 지아비처럼 다리가 불편해진 거야."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총선 지원 유세를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사고로 평생 걸음이 불편했다. 그의 큰 아들 김홍일 전 의원마저도 2년 뒤 교통사고로 평생 불구로 살았다는 사실에 김 여사는 세상이 무섭게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는 것 같아. 이제 대중이도 잊혀지겠지.."

인터뷰를 마친 김 여사는 "이런 이야기들은 어디서 한 번도 한 적 없어. 노인네가 무슨 말을 하겠어. 그런데 대중이는 정말 착한 동생이었어"라며 기자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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