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메뉴판' 연출하는 법

'나만의 메뉴판' 연출하는 법

유은정 기자
2009.08.26 09:55

[머니위크 커버스토리]맞춤 전성시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메뉴

# 만난 지 2000일 기념으로 프러포즈를 하려고 하는데 까다로운 여자친구를 감동시키고 싶어요. 코스요리가 나올 때마다 2000일 기념을 상기할 수 있는 문구나 의미가 있는 메뉴가 좋겠고요. 또 테이블에 빨간 장미꽃잎으로 'MARRY ME' 문구를 새기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리고 메뉴판은 저와 여자친구의 이름을 새겨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주세요. 아, 요리 재료 중에 새우는 꼭 빼주세요. 여친이 새우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의 불란서 식당 ‘시즌즈’에 한통의 예약전화가 걸려왔다.

박성규 시즌즈 부지배인은 능숙하게 고객의 의견을 적어 내려가며 머릿속으로 코스 메뉴와 테이블 세팅을 구상해본다.

◆남들과 똑같은 코스는 NO

프러포즈나 비즈니스, 가족 모임 등 특별한 식사자리에서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맞춤 코스’를 연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메뉴판을 공유할 수 없다는 개성만점의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나만의 코스’를 직접 짜거나 레스토랑 지배인과 상담해 원하는 요리들로 구성된 맞춤형 메뉴판을 선호하는 추세다. 호불호가 분명한 신세대의 경우 음식 재료의 원산지까지 지정하기도 한다.

맞춤이라고 가격이 비쌀 것이라는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격도 고객이 자기 주머니 사정에 맞게 맞출 수 있다는 게 박성규 부지배인의 설명이다.

박 부지배인은 “손님들이 맞춤 코스에 대해 비쌀 것이라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며 “가격대는 물론 테이블 세팅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춤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즌즈 레스토랑에 맞춤 코스를 예약하는 고객은 연간 50~60건. 매주 1팀의 예약고객이 방문하는 셈이다.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가격으로

시즌즈의 기본 디너 코스 요리의 가격은 8만9000원(부가세별도). 고객이 원하는 대로 코스요리를 구상해도 통상적으로 비슷하거나 그보다 1만~2만원 상이한 선이면 주문 가능하다.

평생 잊지 못할 감동으로 기억될 프러포즈의 경우 2인 식사 기준 20만원(부가세별도)정도면 가능하다. 한끼 식사비용 치고 비싸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가슴속에 영원히 남겨지는 추억은 그 어떤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기억된다.

박 부지배인은 “맞춤코스는 가격상승을 통한 이익 창출의 개념보다는 한번 방문한 고객이 재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이 목표”라며 “지난 1994년 맞춤코스 요리로 프로포즈에 성공한 고객의 경우 결혼 후에도 기념일 때마다 시즌즈를 방문하고 있다”고 귀뜸한다.

시즌즈 레스토랑의 고객 10명 중 7~8명은 단골고객이다. 레스토랑 막내 직원의 시즌즈 근무 경력이 8년차. 이쯤 되면 예약 명단만 봐도 단골 고객의 식성, 식사량까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고객과 직원들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성규 부지배인의 보물 1호는 VIP 고객은 물론 한번이라도 맞춤코스를 주문한 고객들의 취향, 식사량, 자리배치도까지 꼼꼼하게 적힌 여러권의 파일이다.

3년 전 맞춤 코스 메뉴판까지 보유하고 있어 고객이 재방문할 경우 알아서 척척 맞춤 코스를 선보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객의 까다로운 요청에 맞춰 다채로운 테이블 세팅을 하다 보니 테이블 세팅 실력도 프로급으로 자동적으로 상향된단다.

◆생선회의 원산지도 입맛대로 골라

맞춤 코스하면 양식당이라는 공식의 틀을 깬 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 일식당의 특성상 프러포즈 고객보다는 비즈니스 고객이 맞춤 코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비즈니스 식사 자리에서 메뉴 선정으로 고심하는 모습은 상대방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미리 상대방을 배려해 일명 ‘묻지마 메뉴’를 예약하는 경우가 많다.

‘묻지마 메뉴’는 스시조의 오랜 단골인 그룹의 총수, 재벌가 사모님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로 일일이 주문하는 것보다 ‘주방장’의 절대 감각에 맡기는 1대 1 맞춤 코스를 말한다.

이희종 조선호텔 스시조 지배인은 “과거에는 계절에 맞는 재료로 고객이 원하는 메뉴를 요구해왔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자신이 원하는 메뉴만을 조합해 가격대까지 맞추는 분위기와 가격 둘 다 놓치지 않는 합리적인 신세대 고객의 맞춤 코스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단, 원하는 맞춤 코스를 주문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방문 당일 주문할 경우 원하는 코스를 맛보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튀김 대신 찜요리를 넣고, 사시미는 일본산으로 선택하는 것은 맞춤 코스의 애교(?) 단계에 속한다고 한다.

메뉴판에 없는 식재료를 요구하거나, 계절상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선택한 고객에게 '어렵다'는 말 대신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주방장이 직접 시장에 나가 재료를 구해오는 경우도 다반사다. 스시조의 맞춤 코스에 있어 ‘NO’란 있을 수 없다는 것.

맞춤 코스를 선택했던 고객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이 지배인은 “얼마 전 부인과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메뉴를 고르고 세상에 하나뿐인 메뉴판을 만들어 깜짝 파티를 선사했던 남편분은 스시조 일식당 내에서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며 “주방장과 남편분이 고심해 선택한 메뉴에 부인이 너무도 만족했다는 인사를 전해와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