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토박이의 '홍대 즐감' 완전정복

홍대토박이의 '홍대 즐감' 완전정복

이정흔 기자
2010.03.16 10:02

[머니위크 커버]홍대 해방구의 모든 것 / 토박이 가이드

춘삼월에 때 아닌 눈이 내리던 지난 9일 찾아간 홍대 앞. 정오를 넘겼는데도 밝은 대낮의 홍대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모습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이 조용해서 조금은 낯설었던 놀이터에서 하루동안 홍대의 이곳저곳들을 안내해 줄 김두하 씨를 만났다.

정물사진을 주로 찍는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는 김두하 씨는 ‘홍대 토박이’다. 경주 태생인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면서 10년 동안을 홍대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지냈다. 그러다보니 어디에 어떤 집이 생기고 없어졌는지 역사를 훤히 꿰고 있는 것은 기본. 이 일대의 웬만한 가게 사장님들과는 ‘안면 트고 형님 동생’하며 지낼 정도로 단골집이 많다. 홍대 토박이가 안내해 주는 홍대의 골목골목, 숨어있는 알짜 공간들을 따라가 보았다.

◆홍대의 멋, 다양한 문화 공존

“제 사진도 찍으실 거죠? 그럼 잠깐만 제 작업실 먼저 들르면 안될까요?”

인터뷰를 위해 김씨의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자, 김씨가 흔쾌히 일행을 자신의 작업실로 먼저 안내한다. ‘Loft:D’라고 쓰여진 철문을 밀고 들어서니 공간 한가운데 화장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근처에 화장하는 남자들이 많잖아요. 제 작업실 겸 남성전용 메이크업샵으로도 운영하고 있거든요.” 김씨가 소개한다. 그러고 보니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국내 최초 남성전용 화장품 샵 ‘맨스튜디오’도 이 근처에 문을 열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화장을 마친 김씨를 따라 간 곳은 서교로에서 주차장 거리가 시작되는 초입, 골목에 숨어있는 카페1010. 하얀색 벽면에 비행기며, 여행가방 등이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이곳은 디자인전문쇼핑몰 ‘텐바이텐’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김씨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어~ 너무 오랜만이에요”라며 매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설윤정 매니저. 그는 “본사에서 MD로 일하고 있는데 오늘은 카페 점장님이 일이 있어, 정말 오랜만에 지원을 나왔다”며 활짝 웃는다.

이 카페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참여했다는 설 매니저는 “이 근처에만 하더라도 디자인회사 등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여럿 있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익창구가 필요하고, 이왕이면 고객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카페를 기획했다”고 설명한다.

“홍대는 감각이 앞서가는 고객들이 많잖아요.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이고 받아들이기엔 이만한 장소가 없죠. 또 여기서 성공하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각오였어요. 우리의 역량을 실험해 볼만한 장소라고 생각했죠.”

김씨가 설 매니저를 거든다. “카페가 워낙 많이 생겼다 없어지는데, 요즘엔 진짜로 가게에 들어가면 ‘이 가게 되겠다, 안되겠다’ 감이 와요. 그런데 대부분은 ‘우선 튀고 보자’는 생각인 것 같아요. 이것저것 독특한 것만 갖다 놓는다고 개성이 생기는 건 아닌데. 그런 집들은 결국 6개월이면 고전을 면치 못하더라고요.”

김씨가 비행기 티켓 같은 표를 한장 내밀어 보여준다. 여기 영수증이란다. 패스포트를 가져와선 열어 보는데 다름 아닌 쿠폰북이다.

“제가 여기를 좋아하는 이유에요. ‘여행’이라는 콘셉트가 확실하잖아요. 쿠폰북이나 영수증 같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데서 나도 모르게 감동을 받는 것 같거든요.”

◆홍대가 커지고 있다?

김씨를 따라 놀이터 근처의 골목을 한참 걷다 보니 벽이며 출입문이며, 낙서가 돼있지 않은 곳이 없다. 김씨는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그려 놓은 것”이라며 “그래피티 골목이 따로 있으니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놀이터를 지나 홍익대학교 앞 큰길에 다다르자 연대 방향으로는 전문미술학원과 미술전문 서적, 미술용품 판매점 등이 여럿 보인다. 미술학도라면 한번쯤 들러야 하는 장소.

김씨는 상수역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다 스타벅스 옆 골목으로 기자를 안내한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인데 여기저기 이색 카페며 레스토랑이 꽤 많이 들어서 있다. 골목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서 홍익대학교 담장과 마주한 곳에 다다르자, 화려한 그래피티 그림들이 펼쳐진다.

알듯 모를듯한 그림을 구경하며 따라 걷다 다다른 곳은 ‘Lea’라는 카페. 김씨는 “전문 디자인 서적도 많고, 팩스와 컴퓨터를 무료로 쓸 수 있어 홍대 예술가들에겐 작업실 같은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카페치고는 유난히 커다란 책상 앞에는 역시나 노트북을 펼쳐놓고 작업에 집중하는 손님들이 많다. 일행이 있건 없건 아무렇지도 않게 CD를 꺼내 음악을 듣고 책을 꺼내 보는 등 자유로운 모습이다. 2층에서는 쇼핑몰 작업을 위해 사진 촬영에 열중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곳 운영자인 강현명 실장은 “홍대라는 특성을 살려 ‘감(感)&필(feel)’이라는 광고회사와 연계해 전문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며 “초기엔 3만원씩 회원제를 받아 복사기 등을 평생 동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1만원대의 물건을 구입하면 컴퓨터나 프린터를 무제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처음 문을 열었던 2007년쯤만 하더라도 이 근처에는 카페 하나 없었어요. 불과 2~3년 만에 근처에 카페가 여럿 생기더니 이 지역까지 카페촌이 돼서 요즘은 경쟁이 치열해요. 홍보 목적으로 가끔 파티를 열기도 해요. 워낙 파티에 익숙한 친구들이라. 하하. 그나마 우리는 안정적으로 운영할 정도 되는데, 요즘엔 근처 땅값도 워낙 많이 올라서 더 힘들어졌다는 사람이 많아요.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죠.”

강씨의 씁쓸한 말에 김씨가 “홍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덧붙인다. “홍대 중심가부터 땅값이 오르니까 가난한 예술가들은 자꾸만 상수동으로 망원동으로 옮겨가는 거죠. 그들을 따라서 또 문화가 생겨나고, 여기처럼 카페들이 자리를 잡으면 자본이 따라 들어오고. 상수동만 하더라도 예전엔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요즘엔 카페들이 워낙 많잖아요. 처음엔 카페 찾아다니는 게 재미였는데, 어느 순간부턴 제가 못따라갈 정도로 카페가 워낙 많이 생겨서…."

말끝을 흐리는 김씨를 따라 상수역 근처를 걷자니, 방금 전 오갔던 대화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직은 주택가의 모습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이곳엔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한번도 가본 적은 없는데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하는 공간인 것 같아요. 언젠가 가보고 싶었는데 지금 가볼래요?” 그러나 김씨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에서도 어김없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저씨 한명을 붙잡고 물어보자 “한달 전에 다 떠났다. 지금은 새로 가게를 오픈하기 위해 공사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변해가는 홍대, 안타까움

걷다보니 다시 홍대 중심가. 5~6시쯤 해가 어둑어둑해지자 부쩍 늘어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주인아저씨가 워낙 무뚝뚝해 ‘조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는 홍대 앞 명물 ‘조폭 떡볶이’에서 배를 채우고 향한 곳은 다닥다닥 옷가게들이 늘어선 골목. 홍대 앞 서교로에서 상상마당 쪽으로 향하는 골목길마다 4~5평 남짓한 좁은 옷가게, 액세서리가게들이 저마다 개성 넘치는 제품을 내걸고 손님들을 유혹한다. 가격은 대부분 1만원대 정도. 저렴한 가격에 홍대의 개성 넘치는 패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옷가게 골목이 아니어도 군데군데 숨어있는 옷가게가 많다는 것이 김씨의 귀띔이다.

서교로를 건너가자 술집이며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김씨는 “서교로를 중심으로 길 건너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밤 늦게 술 취한 사람들이야 예전부터 많았지만 요즘엔 넥타이 풀어진 아저씨들을 유혹하는 유흥가의 화려한 불빛도 그렇고, 외국인들도 ‘여자 만나기 쉬운 곳’으로 홍대를 자주 찾는다.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걷고 싶은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니 이곳저곳 부스를 새로 설치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자세히 가서 살펴보니 '국토해양부 지정, 마포구 U-city 시범사업 공사 중입니다. 3월24일까지 공사를 마치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마포구청에 문의해 보자 "홍대 앞뿐 아니라 마포구 일대에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설치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인포부스"라고 설명한다. 공사가 마무리 되면 인포부스의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홍대 근처의 맛집 정보를 비롯해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녁 8시쯤. 김씨는 “놀이터에 길거리 공연 등을 시작할 때쯤이라”며 다시 길 건너 주차장 거리로 발길을 돌린다. 이맘때쯤 홍대는 완전히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김씨는 “금요일 클럽데이에는 이 일대가 모두 공연장이 된다”며 “홍대야 어디를 가도 클럽이 있지만 클럽 ta와, FF가 몰려있는 일대가 가장 화려하게 변한다”고 귀띔했다.

상상마당에서도 한바탕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는 모양이다. 들뜬 모습으로 공연장 근처에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놀이터로 향하니, 아니나 다를까 눈 속에서도 기타연주와 함께 흥겨운 가락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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