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맛의 판타지 '막걸리 떼루아'

변화무쌍한 맛의 판타지 '막걸리 떼루아'

이정흔 기자
2010.11.26 10:51

[머니위크 커버]막걸리 대전/ 막걸리 재야 고수

막걸리업계에 떠도는 풍문 하나. 우리나라의 막걸리 동향을 알아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가야 하는 곳은? 바로 경기도 성남이다. 남한산성을 비롯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이곳에서는 등산객들의 손에 들려있는 막걸리 병만 봐도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술이 무엇인지’ ‘어떤 브랜드가 뜨고 있는지’ 훤히 꿰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등산객들 대부분의 손에 들려있는 술병은 서울탁주와 국순당이 대부분. 하지만 진정한 막걸리 고수들은 각 지역에서 올라온 전통 막걸리 브랜드를 찾는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무림고수들이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한다.

막걸리 재야(?) 브랜드들의 각축전. 내 입맛 따라, 내 취향 따라 골라잡은 막걸리 한사발이 입에 착착 감겨드는 그 맛이야말로 ‘막걸리 맛 좀 안다' 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

◆재료·제조방법에 따라 수만가지 맛

떼루아(terroir). 와인 애호가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이 말은 포도주, 커피 등이 만들어지는 자연 환경으로 인한 포도주의 독특한 향미를 뜻한다.

현재 전국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내는 양조장은 1000여개 정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막걸리 브랜드만 하더라도 800여개가 넘는다. 특히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지자체 등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신참’ 막걸리 브랜드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수많은 막걸리들은 저마다 각 지역의 재료에서부터 만드는 방법까지 각양각색이다. 그에 따라 수만가지 막걸리 맛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막걸리 떼루아다.

막걸리 포털사이트 주로주로닷컴의 명욱 팀장은 “막걸리는 만드는 방법부터 재료까지 모든 게 다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부산 막걸리는 부산의 물맛과 곡물맛에 따라 독특한 향미가 생겨나고, 창원 막걸리는 역시 창원의 물맛과 곡물맛이 배어나온다.

명 팀장은 “전통 막걸리업체들 대부분이 판매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영세 업체지만, 막걸리시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데는 이러한 ‘막걸리 떼루아’의 영향이 크다”며 “이들이 빚어내는 변화무쌍한 술맛은 우리 막걸리의 우수성과 가능성을 말해주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세련미와 햅쌀로 아가씨 마음까지

저마다의 독특한 향미를 지키며 우리 막걸리의 다양성을 담보해주는 재야 브랜드들도 트렌드는 있다.

최근에는 막걸리 열풍과 함께 아저씨뿐 아니라 아가씨까지 막걸리 소비층으로 흡수되면서, 시큼한 맛보다는 달큼한 맛이 선호되는 분위기.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향이나 꽃잎향을 첨가한 제품이 늘었다. 그만큼 예전보다 막걸리 맛은 순해지고 담백해졌다. 병 모양 또한 큰 변화를 겪었다. 투박하게 아저씨 분위기를 풍기던 것은 옛말. 요즘엔 수려한 그림으로 세련된 여성미를 풍기는 제품들이 꽤 많아졌다. 충남 신평양조장의 '하얀연꽃 백련막걸리'나 경기도 파주시의 ‘초리골 미인 막걸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대거 쏟아져 나온 ‘햅쌀막걸리’의 인기도 눈에 띈다. 고구려문화연구회의 한민족식품운영원이 출시한 경기햅쌀로 빚은 ‘얼수’, 이탈리아 요리사 쥬세폐 바로네와 손잡은 제품으로 유명한 ‘쥬세폐 누보 막걸리’ 등이 모두 지난해부터 새롭게 쏟아져 나온 대표적인 햅쌀막걸리 브랜드다. 햅쌀막걸리 열풍에는 재야 브랜드뿐 아니라 국순당의 ‘첫술’, 참살이탁주의 ‘2010 햅쌀 참살이탁주’ 등 대기업들까지 뛰어들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식품산업처 식품소비촉진팀 안만물 과장은 “햅쌀막걸리는 햇포도로 빚은 와인인 보졸레 누보처럼 막걸리를 고급 술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영향이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막걸리 ‘무림고수’ 대표주자 6선

막걸리 종류가 늘어나면서 마니아들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내 입맛에 맞는 막걸리를 고르는 게 만만치 않은 것이다. 막걸리전문 포털사이트 주로주로닷컴과 막걸리전문주점 월향의 도움을 받아, 막걸리 마니아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켜 줄 ‘무림고수’ 6선을 꼽아봤다.

1.태인 송명섭 생막걸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술은 태인 송명섭 선생이 직접 빚은 생막걸리다. 송명섭 선생은 전북 정읍에서 ‘죽력고’란 전통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주 장인이다. 그가 빚은 술엔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 등이 들어가지 않은 술이다.

때문에 단맛도 없고 시큼털털한 막걸리 맛이 조금은 고약하게 느껴질 수도. 하지만 100% 쌀로 빚은, 게다가 전통 누룩 방식을 이용한 막걸리 본연의 맛을 느껴보고자 하는 마니아들에게 권할 만하다.

2.부산 금정산성막걸리

너무 유명해서 말이 필요 없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마시던 막걸리로, 대통령령으로 허가한 대한민국 민속주 1호 막걸리로 유명하다. 맛은 요구르트처럼 시큼한 것이 특징.

금정산성막걸리 브랜드가 너무 유명세를 타면서 이를 흉내 낸 가짜 제품 또한 많아졌다. 그러나 진짜 금정산성막걸리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라벨을 확인해 보면 된다. 금정산성토산주 유청길 대표의 얼굴 사진이 박혀 있다니, 도가 주인장의 ‘얼굴’을 걸고 만드는 명품주인 셈이다.

3. 하얀연꽃 백련막걸리

늘씬하게 쫙 빠진 술병이 세련된 미인을 연상시킨다. 청와대 만찬주로 채택, 사용됐다는 명품 막걸리다. 77년 전통의 충남 대표 막걸리의 명가 신평양조장에서 당진 해나루쌀을 사용해 제조된다. 백련잎이 함유돼 있어 첫잔을 한모금 입에 머금는 순간 은은한 향기로움이 느껴진다. 감미료를 거의 넣지 않아 단맛은 없으며, 탄산의 톡 쏘는 맛과 향이 청주와 비슷하다.

4.전남 함평 자희향

전남 함평 자희향은 지난해 출시된 신참내기 브랜드. 막걸리라기보다는 물과 누룩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3개월 정도 일반 막걸리보다 오래 숙성시켜 빚어낸 전통 탁주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직접 감수를 맡은 고품격 막걸리다. 달큼한 국화향이 옅게 퍼지는 향과 부드러운 술맛으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5.우리쌀 솔바람 생막걸리

2010 대한민국 술 품평회에서 2위에 해당하는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맛과 품질을 확실하게 인증 받은 막걸리다. 조선양조 제품으로 충북 괴산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청결미만을 사용해 빚었다.

칠보산 계곡에서 흘러들어 스며든 지하 100m 천연암반층에서 취수한 자연청정수를 사용해 ‘맑은 물맛’만큼이나 ‘맑은 술맛’을 자랑한다. 생막걸리답게 톡 쏘는 청량감이 있지만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6.알밤막걸리

한잔 따르자 유난히 짙은 색의 노란 빛깔이 맛깔스럽다. 알밤이 2% 함유돼 있는 공주밤동산 알밤막걸리는 구수한 맛으로 막걸리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이다. 달짝지근한 천연 알밤의 맛과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게 마치 누룽지 맛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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