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알고 지내던 애널리스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작성한 모 중견기업 A사의 분석보고서와 관련한 기사를 수정해 줄 수 없냐는 전화였다.
A사는 대표적인 '녹색성장 기업'으로 어지간한 투자자들은 이름을 다 기억하는 곳이다. 그 애널리스트가 쓴 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사로 썼던 적이 있어서 처음엔 뭔가 실수가 있었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보고서에 "올해 주력사업 부문 영업이익률 30%를 달성할 것"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A사에서 꼭 빼달라고 애걸복걸한다는 것이었다.
그 회사 제품의 구매처인 대기업에서 단가인하 압력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에도 역시 그것 때문이구나.'
중소형 종목의 실적을 취재하고관련 기사를 쓸 때 종종 겪는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새해 벽두에 기업의 올해 실적전망을 취재할 때나, 알짜 기업이 상장설명회를 할 때면 이런 일이 반복된다.
기업의 IR 담당자와 통화를 할 때마다 기자들은 올해 매출이 얼마나 나올 것인지, 어디서 매출성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보는지, 영업이익률은 얼마나 달성할 것인지 등 사항을 묻는다. IR담당자는 자신만만하게 올해 실적전망을 밝히다가 마지막엔 꼭 한 마디 덧붙인다. "우리가 장사 잘된다고는 쓰지 말아주세요"
지난해에 이어 코스피지수가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음에도 중소형 종목들은 주가가 바닥을 기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눈치를 보느라 자기네 올해 비전을 자랑스레 내세우지 못한다. 케인스가 기업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으로 치고 나가기는 커녕, 주인 눈치보는 강아지 꼴이 돼 버린 셈이다.
투자자로서는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가 힘드니 주가도 시장의 무관심 속에 바닥을 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목표로 '친서민 공정사회'를 내세우고 '공정사회 점검회의'를 매월 1회 주재하고 있다.
하지만 새해가 열렸어도 대기업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중소형 기업들의 사정은 그리 변하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