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블로그 권력/ 위기의 블로거
#1. 새롭게 오픈한 음식점에 카메라를 든 한 남녀커플이 들어온다.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한 이들은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가 싶더니 주인에게 카메라를 내밀며 당당하게 요구한다. “제가 파워블로거인데, 오늘 먹은 음식은 공짜로 제공해 주시죠.”
#2. 화장품 블로그를 운영하는 L양. 그의 블로그에는 화장품 회사에서 진행하는 체험단에 응모해 얻게 된 제품 사용 후기 글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즘 체험단 행사에 가보면, 다른 블로거 친구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지난번 G회사 체험단 응모했는데 떨어졌어. G사가 계속 그렇게 나오면 제대로 한번 씹어 줄 작정이야.”
이제는 ‘파워브로커’나 ‘블로그거지’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언제부터인가 온라인 세상의 신뢰를 등에 업은 체 블로그를 권력인냥 휘두르는 ‘파워블로거’들을 비꼬는 말이다. 심지어 블로거가 아닌 이들까지 파워블로거를 사칭하며 당당하게 ‘공짜’를 요구한다. 그러니 블로거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오래도록 신뢰를 쌓아오고 양심을 지키는 블로거들까지 싸잡아 욕을 먹는다. 블로거들이 전에 없는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 블로그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깨끄미의 난이 뭐야?” 지난 7월 초 네이버 등 검색 포털 사이트에는 며칠이 지나도록 ‘깨끄미의 난’이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돼 있었다. ‘베비로즈의 작은 부엌’이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인 파워블로거 현진희 씨가 진행한 공구(공동구매)였던 오존살균세척기 깨끄미가 하자 있는 제품으로 밝혀지면서, 피해자들이 보상을 위해 집단행동에 돌입하는 등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피해자 수만 하더라도 3000명. 피해 제품의 가격만 해도 한 대당 30만원 정도 금액이었다.
제품도 문제였지만 그러나 정작 소비자들이 배신감을 느낀 데는 다른 이유가 컸다. 베비로즈는 이번 공구를 진행하며 30만원의 제품 가격 중 7만원을 수수료로 수익을 거뒀다. 블로거 수익만 해도 자그마치 2억원가량. 중간 판매마진을 줄이며 더욱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공구의 취지인데, 파워블로거의 수수료가 이렇게 높게 책정돼 있다는 점에 대한 불신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이 블로거가 추천한 제품을 믿고 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주부의 입장에서 제품의 요모조모를 따져볼 수 있다는 것’이지만, 이미 자본이 개입된 블로거들은 광고글과 다름없는 포스팅을 올려놓기 일쑤였다.
블로고스피어(블로그로 연결된 온라인 공간)에서는 “언젠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1인 미디어에 맞먹을 정도로 블로그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이미 다른 한편으로는 블로그에 대한 신뢰가 많이 하락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미 블로거들 대부분이 기업과 제휴를 맺고 활동한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 실제로 베비로즈 사건 이후 몇몇 파워블로거들이 기업 마케팅 참여와 관련해 잇따른 양심고백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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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IT블로거는 “포스팅을 잘 살펴보면 삼성 쪽 블로거인지, 팬택 쪽 블로거인지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다”고 운을 띄었다. 그는 “포털 사이트의 파워블로그로 선정되거나 블로그 인지도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기업에서 연락이 오기 마련이다”며 “블로거 입장에서는 스스로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대부분은 한 두 번 비즈니스 제의를 받다 보면 원칙이 흔들리고 기업 논리에 휘둘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블로그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기업에서 아예 파워블로그 기자단을 마련해 융숭하게 대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온라인 마케팅 관계자는 “파워블로그들의 경우 금전적 계산이 더 뚜렷한 경우가 많아 행사를 진행하는 데도 더욱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블로그들이 먼저 ‘포스팅 하나 당 OO만원’ 정도로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블로거 커뮤니티에서 포스팅에 대한 금전거래가 당연시되고 만연해 있는 셈이다. 물론 행사에 소요되는 숙박시설이라든지 셔틀버스 등은 별도로 제공된다. 그는 “파워블로거들도 자신들의 인지도에 따라 부르는 값이 천차만별이다”며 “비슷한 수준의 블로거들이 모여 자신들의 가격을 매기는 경우도 봤다”고 전했다.

◆ 위기의 블로거…탈출구 있나?
사태가 걷잡을 수없이 불거지자 지난 22일 국세청은 블로거 1300여명을 상대로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네이버와 다음 등에서 파워블로그로 선정된 이들에 대해 수익 활동 여부를 묻기 위한 것이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가 아닌 단순히 블로거들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며 “블로거들의 몇 퍼센트가 이와 같은 수익활동에 참여했는지, 얼마나 많은 수익을 거뒀는지 아직 파악단계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14일에는 공정위에서 파워블로거들의 수익 활동에 대한 제재조치를 마련해 발표하기도 했다. 만약 블로거가 업체로부터 금전적 대가를 받고 게시글을 작성한 경우, 이를 소비자들이 파악할 수 있게끔 명확하게 표시해 놓도록 한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수익블로거들을 개인사업자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해석도 학계나 관계자마다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며 “어디까지를 규제의 기준으로 삼아야하는지, 어떻게 사실 확인을 진행할 것인지 기준이 전혀 마련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실태 파악 단계이기 때문에 점차 논의를 거쳐 결정될 부분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모든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사건 전개에 우려의 시각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한국블로그산업협회 관계자는 “지난 25일에도 몇몇 블로거에게 공정위로부터 대상으로 나이, 직업 등등을 묻는 조사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조용히 자신의 블로그를 꾸리며 전문성을 쌓아나가는 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싸잡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문제는 블로거들의 도덕성이 아니라 이들을 위한 규제책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에 다다르면 개인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지 광고 표시 등은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블로거들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활동을 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이와 같은 혼란이 소비자들의 신뢰 하락으로 불거진 셈이다.
블로그거지나 파워브로커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는 “블로그거지는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기존 파워브로커들에 무임승차한 명백한 사기행위다. 기존의 법 안에서도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블로그를 통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확실한 처벌을 가하되, 나머지 블로거들에 한해서는 건전한 수익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잡아 주는 것이 먼저라는 얘기다.
그는 “사건 이후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나 교육이 부쩍 늘었다. 일단은 블로거들 스스로의 자율 정화쪽으로 가닥을 잡고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