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블로거, 짜고 치지만 않는다면야

기업과 블로거, 짜고 치지만 않는다면야

김진욱 기자
2011.08.07 11:05

[머니위크 커버]블로그 권력/기업과 블로거

#지난 2009년 5월 독일의 베를린. 글로벌 IT기업 A사가 전 세계 언론인 수백여명을 초청해 ‘미디어 데이’를 가졌다. 한국에서도 30여명의 언론인이 참가해 차세대 IT기술의 면면을 살펴보며 A사의 신제품과 신기술을 주목했다. 당시 미디어 데이에 참가한 30여명의 한국기자들 중 3분의 1 수준인 10여명은 실제로는 파워 블로거들이었다.

기업과 블로거. 이 둘은 언제부터인지 공생 혹은 공존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최근 파워블로거 ‘베비로즈 사건’ 처럼 블로거가 기업에 기생(?)해 자신의 이익을 채운 사례도 있었지만 블로거의 파워가 기업에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막강하다.

A사의 사례에서 보듯 이제 파워 블로거들은 ‘제도권’ 안의 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보전달, 알 권리의 주체자로 우뚝 솟았고 기업의 ‘제품’을 뜯어보는 눈도 웬만한 전문가 수준과 동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블로거, 뗄려야 뗄 수 없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와 기업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에 가깝다.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묘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대한 기업의 지속적인 관심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구글은 블로그 검색엔진사업에 대한 사전포석으로 블로그붐의 진원지인 블로거(Blogger)를 인수했고, 아메리카온라인(AOL)도 블로그 운영업체인 웹로그(Weblogs)를 인수해 100여명의 전문가가 프리랜서 블로거로 참여하고 있는 블로그 네트워크를 온라인 서비스에 추가했다.

한국기업 역시 고객 성향에 발맞춰 기존의 운영 방식을 탈피하고 고객들이 원하는 사항들을 정확히 짚어내고자 블로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을 기업 마케팅에 십분 담아내려 노력한다.

의류 업체 리바이스는 지난해 9월 전 세계 패션 블로거를 런던으로 초대해 3박 4일 동안 패션쇼와 파티를 벌였고, 올림푸스도 올 2월 최신 디지털 카메라의 사용 후기를 올린 우수 블로거를 뽑아 태국 치앙마이 4박 5일 여행과 100만원 상당의 카메라 렌즈 등을 제공했다.

통신업체의 경우 블로거와 함께 신규 아이템을 공동 구상하기도 한다. SK텔레콤은 최근 자사 가입자에게 파워블로거와 협력해 제작한 생활밀착형 콘텐츠를 모아놓은 '올댓 라이프100'을 제공하고 있다. 100개의 애플리케이션이 시리즈 형태로 구성된 ‘올댓 라이프100’에는 자동차, 여행, 어학, 요리, 피부미용 등 다양한 정보가 담길 예정이다.

건설업계도 ‘블로거 활용처’의 예외가 아니다. 금호건설은 지난 2009년부터 온라인 홍보대사 ‘파블로(파워블로거의 준말)’를 통해 기업 이미지 제고에 나서고 있다. 올해까지 파블로의 대학수는 모두 70명으로, 이들은 '1촌1사 마을 일손 돕기', '에코 금호! 에코 파블로!' 등의 미션을 통해 금호건설의 사회공헌 활동과 이미지 제고에 활용되고 있다.

삼성과 LG는 아예 '파워블로거'를 공개 모집해 자사의 제품홍보를 돕도록 하고 있다. 최근삼성전자(219,500원 ▼5,000 -2.23%)는 19명의 IT부문 파워블로거를 ‘삼성 블루로거 1기’로 모집했는데, 이들은 삼성전자의 최신 제품을 체험하며 체험기나 제품 리뷰를 블로그에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다.LG전자(127,500원 ▼2,400 -1.85%)역시 LG전자 블로거 ‘THE BLOGer’로 파워블로거를 불러들였다. 10명 내외인 이들은 월 2회 이상 개인 블로그에 LG전자 관련 소식을 작성하며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사실 기업들의 블로거와의 공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로운 것에 민감한 블로거들을 대상으로 신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나 신제품을 테스트 할 수 있는 기회를 기업들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기업으로 유명한 레고는 블로그를 사용하는 온라인 고객 요구에 맞춰 장난감 기차세트를 제작했는데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출시 10일만에 1만세트를 판매하는 성과를 얻었다. 소니, 일렉트로닉아츠 등 컴퓨터 게임소프트 회사들도 잠재고객에게 테스트 CD를 보내 주는 과거의 베타테스트 방식에서 점차 벗어나 이제는 블로그를 이용한 방식으로 전환 중이다.

◆‘철퇴’ 맞은 파워 블로거…블로그마케팅 위축?

기업과 블로거가 이처럼 ‘상생의 구조’라는 기본 틀을 유지한다면 별 문제없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업과 블로거의 관계에서 ‘부작용’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어서다. 블로그와 블로거의 상업화 논란이 그것이다.

현재 국세청은 홍보성 기사를 싣거나 공동구매를 알선하고 막대한 수입을 올린 파워블로거들에 대한 일제 실태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 이성남 의원도 파워블로거가 외부의 돈을 받았을 경우 이를 블로그에 명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재 블로그를 통해 상품을 공동구매하는 과정에서 부당이익을 챙긴 파워 블로거에 대한 제보가 청와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됐다”면서 “블로거의 사업방식을 조사해 원가와 매출 구성을 살펴본 뒤 혐의가 확인될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성남 의원 측도 “파워블로거의 상업행위를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소비자가 이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조만간 블로거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파워블로거들을 둘러싼 상업성 논란의 핵심은 기업 홍보성 게시물을 싣거나 제품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대가로 거액의 수수료를 챙겨왔다는 데 있다.

현재 활동 중인 파워블로거는 약 2500명. 이들은 많은 게시물을 올려 인기를 얻으면서 포털로부터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지만 정작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는 파워블로거가 올리는 광고 홍보성 게시물이나 공동구매를 관리, 감시할 모니터링 기구는 없다.

이러다 보니 인터넷 상에는 스스로 파워블로거를 사칭하며 식당에서 공짜 음식을 요구하거나 방문자 수를 빌미로 거액의 돈을 챙긴 블로그나 까페에 대한 제보글이 이어지고 있다.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는 “블로거들이 대가를 받고도 게시물을 중립적이고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쓴 것은 일종의 기만”이라며 “블로그의 영업 행위와 관련된 제도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블로그 비리’ 척결, 기업이 나서다

블로그의 상업성, 블로거의 비리 문제가 최근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점은 ‘블로그의 수혜자’에 가까웠던 기업들이 비리 척결에 발 벗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정직 ▲투명 ▲기업시민정신 등 3가지 축으로 구성된 '온라인 소통원칙'을 최근 확정해 자사 블로그를 통해 공식화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회사가 파워블로거들에게 리뷰용 제품을 지원하게 될 경우 지원 사실을 블로거들의 리뷰 포스트 내에 '로고' 등을 통해 명시해야 하고, 자사 임직원들은 비실명으로 삼성 제품 혹은 경쟁사 제품에 대한 평가를 달 수 없다.

LG전자도 지난 2009년부터 블로그를 포함한 소셜미디어 전반에 걸친 윤리강령을 제정한 것을 최근 더 확장시켜 모든 제품 홍보 및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소셜미디어에 참여할 경우 이를 반드시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통신업계 역시 블로그의 투명성 강화에 적극성을 띠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30여명의 블로거를 운영하고 있는SK텔레콤(100,000원 ▲1,200 +1.21%)은 파워블로거가 작성하는 글에 대한 무개입 원칙을 더 강화하기로 했으며,LG유플러스(16,600원 ▼140 -0.84%)도 현재 운영 중인 20명의 파워블로거에 대한 자율 권한을 확대, 블로그 편집 관련 요구는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

기업 내 블로그 전담팀도 있다

기업의 블로그 마케팅 활용도가 높아진 만큼 기업 내 블로그를 전담하는 부서나 임원이 등장한 점도 블로그와 기업 사이에 등장한 이색풍경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저명한 블로거인 로버트 스코블을 'CHO(Chief Humanising Offier)'로 불리는 대외 PR임원으로 채용해 눈길을 끌었다. 스코블은 본래 NEC에서 고객지원 업무를 담당하면서 개인 블로그인 '스코블 라이저'를 통해 자사 제품의 비판을 서슴지 않는 솔직한 글로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었던 인물이다.

한국에선 삼성전자가 블로그 등 SNS 부문 강화를 위해 전담 부서를 운영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블로그 등 SNS의 전담업무를 맡는 인력은 총 12명으로, 이들은 본사 커뮤니케이션팀에 소속되면서 이 업무를 수행한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대학,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스토리텔러’ 20명도 별도로 고용해 SNS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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