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투자노트]
어린 시절 주식이 뭔지도 모를 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주식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부잣집 마나님이 주식 중개인에게 투자를 부탁하는 장면을 우연히 본적이 있다. 그 마나님은 중개인에게 커다란 지수 차트를 가리키며 "여기 지수가 제일 밑에 내려왔을 때 사서 여기 지수가 제일 위로 올랐을 때 팔아주세요"라고 요구했다.
중개인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대답했고 방청석에서는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어린 나는 당연해 보이는 그 마나님의 요구가 왜 웃음거리가 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수가 제일 낮게 내려왔을 때 사서 제일 높게 올랐을 때 파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과거 차트를 보면 바닥에서 사서 천장에서 파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지수가 많이 떨어졌다 해도 이것이 바닥인지 아니면 더 떨어질지, 혹은 지수가 많이 올랐다 해도 이것이 천장인지 더 오를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투자자들은 여전히 '저점 매수-고점 매도'의 '환상' 속에서 산다. '환상' 속에서 살기 때문에 지난 8월 이후 글로벌 증시가 폭락한 뒤 수많은 투자자들이 '저점 매수'를 꿈꾸며 바닥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투자자들에게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칼럼니스트 제이슨 즈웨이그는 저점 매수의 꿈을 깨라고 조언한다. 저점 매수는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것이다. 투자란 결국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지만 이것이 저점 매수-고점 매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이유는 3가지다.
◆시장 저점은 아무도 모른다
첫째, 저점이 어딘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8월초 증시가 폭락하자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너무 많이 떨어져 저점이라고 생각하며 매수를 고민했다. 하지만 증시는 8월 중반까지 불안정하게 움직였고 그 뒤 안정되는가 싶더니 지난주 22일에 또다시 다우지수가 500포인트 이상 폭락하며 패닉을 재현했다. 이 결과 아시아 증시는 23일 '블랙 프라이데이'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얼마나 떨어졌을 때 사야 저점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증시가 2% 이상 떨어지면 저점 매수에 들어가도 괜찮을까? 5% 이상 떨어지면 확실한 저점 매수일까?
"떨어지는 칼을 잡지 말라"는 증시 격언처럼 많이 떨어져 싸다고 생각하고 매수했지만 더 떨어져 저점 매수가 투자를 망치는 칼이 될 수도 있고 바닥이라고 판단했지만 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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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투자하면 저점 매수는 의미 없다
저점 매수의 또 다른 문제는 장기적으로 주식 투자가 플러스 수익을 낸다고 믿는다면 저점 매수를 해봤자 수익률을 높이는 효과는 크지 않다는 점이다. 시장이 장기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산발적으로 오르는 것처럼 떨어질 때도 제 멋대로 띄엄띄엄 떨어진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주가는 높은 수준일수록 더 자주, 더 많이 떨어진다. 문제는 증시가 오르다가 방향을 틀어 떨어지기 시작해도 투자자들은 이것이 추세 변화인지 모르고 비싼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저가 매수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뱅가드그룹의 투자전략 애널리스트인 프랜시스 키너리 주니어는 시장이 고점일 때 하락이 더 나주 나타난다며 고점 부근에서 주가가 떨어질 때 매수하는 것은 저가 매수와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피션트 프론티어 자문의 투자 담당 이사 윌리엄 번스타인은 지난 10년간 S&P500 지수의 움직임을 따르는 뱅가드500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경우를 가정해봤다. 10년 전에 뱅가드500 인덱스펀드에 투자했다면 평균 매입단가는 77.22달러로 계산됐다.
반면 S&P500 지수가 하루에 2% 이상 떨어질 때마다 투자했다면 137번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이 때 평균 매입 단가는 82.82달러로 오히려 올라간다. 5% 이상 하락했을 때 투자했다면 13번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며 평균 매입 단가는 78.39달러로 2% 이상 하락했을 때보다는 싸지만 10년 전 단 한 번 매입했을 때보다는 평균 매입 단가가 높았다.
번스타인에 따르면 10년 전에 한번 투자했을 때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3%지만 5% 하락할 때마다 샀을 때는 연평균 수익률이 0.1%포인트 떨어지고 2% 하락할 때마다 투자했을 때는 0.8%포인트만큼 낮아졌다. 어차피 증시가 장기적으로 오른다고 생각하고 장기 투자할 생각이라면 머리를 굴려가며 저가 매수의 기회를 노리는 것보다는 한번 투자해놓고 우직하게 기다리는게 낫다.
아울러 장기간을 놓고 보면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사나 주가 수준에 관계없이 일정 기간마다 일정액씩 적립식 투자하나 수익률 차이는 미미하다.
◆저점 매수보다 리밸런싱이 더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저점 매수는 더 높은 가격에서 팔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점에서 저점 매수보다 수익률을 올리는 더 효과적인 방법은 오른 자산을 팔아 떨어진 다른 자산을 매입하는 자산 재조정(리밸런싱)이다.
뱅가드그룹의 키너리는 과거 10년간 주식과 채권에 함께 투자하면서 정기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주가가 2% 이상 급락했을 때 이른바 저점 매수하는 전략보다 수익률이 연평균 0.3%포인트 더 높았다고 밝혔다.
웰스로직의 재무설계사인 앨런 로스도 전체 자산의 40%는 미국 주식에, 20%는 해외 주식에, 40%는 미국 채권에 투자한 뒤 매년 말 오른 자산은 팔고 떨어진 자산은 더 매수해 자산 비중이 '40: 20: 40'이 유지되도록 재조정하는 경우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5.6%였다고 밝혔다. 이는 자산을 매수한 뒤 단순히 보유했을 때 연평균 수익률 4.9%보다 높은 것이다.
주가가 떨어질 때 매수하면 마치 백화점에서 '폭탄세일'이란 팻말이 붙은 매대에서 물건을 샀을 때처럼 싸게 샀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폭탄세일'을 통해 매수한 물건이 당신에게 진정한 부가가치를 선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떨어졌을 때 매수한 주식이 당신의 투자 수익률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쇼핑할 때 '싸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필요한 것을 명확한 파악해 쇼핑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이고 분명한 투자 계획이 있으면 시장이 요동칠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저가 매수'의 환상이 있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며 '지금이 기회다'하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 크게 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