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금리 역대 저점으로 하락…추가하락도 가능
유럽 위기 불안감이 촉발시킨 안전자산 선호로 미국·영국·독일 국채 금리(가격과 반대)가 일제히 사상 최저점 부근으로 하락했다.
유럽 위기의 한복판에는 스페인이 있다. 스페인 정부가 스페인 대형 은행인 방키아에 자금지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밝힌 뒤 몇 주가 채 안 된 지난 25일 235억 유로의 자금지원이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며 스페인의 사면초가 상황이 부각되고 있다.
방키아 뉴스가 취약한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은 파괴적이었다. 스페인 증시는 9년 저점으로 떨어졌고 유로가 급락했으며 스페인 국채 금리도 '마의 7%'에 근접한 수준으로 상승했다.
서둘러 실시된 28일 라호이 총리의 기자회견에서는 방키아 지원 방안에 대한 불확실함만이 부각됐다. 스페인 정부는 아직 방키아 지원을 위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스페인 은행권이 유럽연합(EU) 구제금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만이 반복됐다.
스페인 은행권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 스페인 은행들은 은행예금 자료를 인용해 뱅크런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공식 은행 예금 데이터가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 나온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라호이 총리는 비공식적으로 EU와 독일에 유럽중앙은행(ECB)이 뱅크런을 막고 스페인 국채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유로존의 모든 은행예금을 보증토록 해줄 것을 호소했다. 스페인 정부의 이 같은 제안은 뱅크런 우려를 방증한다.
30일 뉴욕타임스(NYT)는 "위기가 스페인의 표어"라며 "스페인에는 유동성 위기, 부채 위기, 은행 위기, 경제 위기, 신뢰 위기, 투자자 위기, 실업률 위기까지 모든 위기가 존재 한다"고 보도했다.
한 외교관계자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이 중요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시장은 가격에 위험을 반영하는 건 잘하지만 불확실성은 싫어하는데 바로 지금 이 불확실성이 스페인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구제금융 가능성에 급격히 확산된 안전자산 투자심리는 미국, 독일 등의 국채 금리를 역대 저점으로 끌어내렸다.
31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독일, 영국 국채 금리 하락(국채 가격 상승)이 앞으로 더 가파른 내리막을 예고하는 불길한 전조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이클 자프티에스 HSBC 금리 트레이딩 대표는 "시장이 낮은 수익률에 대해서는 거의 우려하지 않은 채 그저 안전자산 매입으로 현금을 비축해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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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채 입찰 가격을 볼 때 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0일 기록한 역대저점 1.61%에서 1.5%까지 추가 하락할 수도 있다. 특히 유럽에서 미국으로 은행 문제가 전염될 경우 국채금리 급락이 가능하다.
앨런 러스킨 도이체방크 투자전략가는 "시장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유로존 발 위기가 전 세계 경제로 전염될 수 있다는 테일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며 "안전자산이 많지 않은데 미 국채는 얼마 안 되는 자산 중 하나여서 금리는 지금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금리 하락이 과도하다는 데 대한 베팅을 망설이고 있는 점은 공포가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드러낸다.
소시에떼제너럴의 피젤리오 타타 투자전략가는 현재 트리플A 국채금리가 오랜 기간의 내림세나 폭락세를 의미하는 "떨어지는 칼날(falling knife) 같다"며 "유럽 위기가 해결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지금 헤지펀드나 중개 딜러 간에 다른 자산을 매입하고 채권을 매도할 의사가 없다"고 전했다.
타타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향후 3달 간 1.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로존 위기와 더불어 연말 감세 혜택 종료에 따라 내년 세금이 인상과 재정지출 삭감이 겹치는 재정 벼랑(fiscal cliff), 중국 경기둔화 신호 등 안전자산 가격을 높일만한 요소들이 동시에 부각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뉴욕 딜러들은 30일 미 국채 수요를 끌어올린 최대 원인을 유럽으로 지목했다.
릭 킹그먼 BNP파리바 이사는 "미 국채 금리가 독일 국채 금리와 함께 저점을 경신하고 있다"며 "미 경제에 대한 좋은 소식들이 없다면 미 국채 매도세가 발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대비 2년 저점으로까지 하락한 유로 급락세도 미 국채 수요 확대로 이어졌다.
유로존 위기의 최종적인 해결책이 결국 인플레이션 상승이나 독일의 지원 확대를 촉발해 독일 국채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독일 국채 대비 미 국채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요인이다.
특히 30일 수익률이 가장 크게 떨어진 국채가 30년만기였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날 미 30년만기 국채 금리는 전일대비 14bp 하락한 2.70%를 기록하며 지난해 10월 기록한 역대 저점 2.67%를 소폭 웃돌았다. 30년 물 역대 저점은 2008년 12월의 2.50%다.
리차드 질훌리 TD증권 투자전략가는 유로존 붕괴 위험이 고조되고 미국 디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든다면 30년 물 금리가 역대 저점을 경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톰 투치 CIBC 월드마케츠 미 국채 트레이딩 대표는 이렇게 될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추가 양적완화나 긴급 채권매입을 실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