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부자<5>]김현주 이성당 사장 "동네빵집 새로운 롤모델 만들어 재능기부"

배만 불러도 부자인 것 같았던 시대가 있다. 배고픈 동네 꼬맹이들이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빵집 앞에 코를 대고 '미래 빵집 주인'을 꿈꾸며 허기를 달래던 1950~60년대 얘기다.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덧 빵은 부식(副食)이 됐지만 60년 넘게 한자리에서 빵을 구워내며 변함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곳이 있다. 국내 최고(最古)의 빵집, '이성당'(李成堂)에서 대를 이어 훈훈한 사회공헌을 펼치고 있는 김현주 사장(사진·50)을 만났다.
◇"공짜도 손님, 남는 빵으로 기부 안한다"
이성당은 1945년 광복을 맞던 해에 전북 군산시에 문을 열었다. 김 사장의 시부모님이 친척과 동업을 하다 1960년부터 단독으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김 사장은 1984년 남편인 조성용 대두식품 회장(56)과 결혼하면서부터 이성당과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조 회장이 팥 앙금과 쌀가루를 생산하는 대두식품을 설립하자 김 사장이 이성당 운영을 전담하게 됐다.
김 사장은 월 1~2회 복지시설에 빵을 전달하고, 군산시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온 공로로 올해 초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아름다운 납세자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상은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면서 봉사활동 등 사회공헌을 실천한 납세자에게 주는 상이다.
김 사장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사회공헌'이나 '나눔'이라는 말이 나오면 연신 손사래를 치며 수줍게 웃었다.
"어우, 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네요. 빵을 좀 나눠먹은 것 밖에 없는데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하니 쑥스러워요. 시부모님이 정기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지역에 어려운 사람들이나 종교단체 등에 빵을 기부해 오셨기 때문에 저도 그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별 일 아니라고 말하지만 김 사장의 빵 기부에는 나름의 확고한 원칙이 있다. 흔히 빵집에서 빵을 기부하면 팔다 남는 걸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성당은 기부를 위해 빵을 따로 만든다. '공짜도 손님'이라는 김 사장의 철학 때문이다.
"제 원칙은 돈 받고 파는 건 돈 받고 팔고, 좋은 데 쓰는 건 따로 한다는 겁니다. 남는 걸로는 기부하지 않습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갈 땐 따로 주문을 넣어서 빵을 만듭니다. 공짜도 손님이기 때문이죠. 맛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혹 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늘 신경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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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의 원칙이 확고하다 보니 빵이 남을 것 같은 날도 장사를 모두 마친 후 남는 빵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저녁이 되기 전에 미리 공동체에 보내곤 한다. 김 사장은 "사실은 빵이 잘 팔리기 때문에 남는 날도 별로 없다"며 웃었다.
이성당은 빵 기부뿐 아니라 제과점으로는 이례적으로 올해 초 무료 음악회도 열었다. 김 사장이 후원하던 지방의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박물관에서 음악회를 열고, 공연을 보러 온 지역주민들에게 사은품으로 빵을 나눠주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오케스트라에 간식으로 빵을 후원해오다 지역 주민들에게 그동안 이성당을 많이 이용해 주셔서 고맙다는 취지로 음악회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하게 됐어요. 앞으로도 1년에 한번 정도는 무료 음악회를 열 생각입니다"
◇"소규모 빵집창업 롤모델로 재능기부"
이성당에서 만드는 200여종의 빵 중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건 앙금빵과 야채빵이다. 앙금빵(1200원)은 평일에 5500~7000개가 팔려나가고, 주말에는 9000~10000개씩 팔린다.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셈이다. 또 다른 인기 메뉴인 야채빵(1400원)은 평일에 1700여개, 주말에는 2500여개씩 팔린다. 야채빵은 앙금빵과는 달리 준비된 재료가 떨어지면 더 구워낼 수가 없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손님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성당은 현재 20년 넘은 제빵 경력자들을 포함해 직원 60명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56억원이고, 올해는 6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일 매장으로 높은 수익을 내다보니 분점이나 프랜차이즈의 유혹이 찾아오기 쉽지만 김 사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분점은 관리가 어려워서 할 수 가 없고, 프랜차이즈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대신 요즘 동네빵집들이 다 어렵다고 하고 제과점 창업이 쉽지 않은데, 성공적인 소규모 빵집의 모델이 될 만한 걸 만들어 보고 싶어요"
김 사장이 구상중인 것은 일종의 '재능기부'다. 내년께 서울에 3~4명이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소규모 쌀빵집을 론칭하고, 오픈 노하우를 무료로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작은 빵집을 하나 내려고 해도 투자금, 콘셉트, 근무조건, 디자인 등 신경 쓸 것이 많잖아요. 제가 먼저 운영해 보고 투자금이 얼마나 들었고, 매출은 어떤지 등을 다 공개해 보려고 합니다. 쌀 원재료를 우리한테 공급받는 조건으로 가게 디자인이나 레시피 등도 다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할 거에요."
김 사장은 동네빵집들이 프랜차이즈 업체에 밀리는 가장 큰 이유로 근무여건을 꼽았다. 대규모 물량 공세를 펴는 프랜차이즈 빵집들에 비해 적은 인원이 일하는 동네빵집은 경쟁력에서 뒤질 수 밖에 없다는 것.
"프랜차이즈 빵집들은 빵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공급 받기도 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어요. 하지만 소규모 빵집은 그런 게 어렵기 때문에 하루 종일 문 여는 시간이 길고, 근무여건이 열악할 수 밖에 없죠. '일주일에 한번은 쉴 수 있는 빵집'을 모토로 적은 인원으로 할 수 있는 조그만 제과점의 롤모델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이성당 정도의 명성이면 좀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도 김 사장이 위험을 무릅쓰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뭘까.
"저희는 제과점을 오래했어요. 처음엔 생계 수단이었는데 이걸로 인해 많은 식구가 편안하게 살고 있고, 제과업을 토대로 남편이 하는 팥 앙금 공장도 발전하고 있어서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1남2녀를 둔 김 사장은 자녀들이 원한다면 대를 이어 이성당을 물려줄 생각이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자신의 자녀들처럼 한창 공부할 젊은이들을 후원할 계획이다.
"기회가 되면 대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사실 제 아이들을 유학 보내면서 한국에서도 배울 것이 많지만 젊은 애들이 나가서 이것저것 배워보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형편 안 되는 친구들을 해외로 보내주고 싶습니다. 그 나이에는 금전 부담이 클 텐데 얼마간이라도 나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 학비 지원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사회공헌을) 더 많이 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