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상흔' 얼룩진 파주운정3지구를 가다

[르포]'상흔' 얼룩진 파주운정3지구를 가다

송협 기자
2012.10.30 11:42

[머니위크]"반값 보상에 빚더미 앉았다"

"전체 주민 부채가 무려 1조2000억원이 넘고 매달 이자만 수천억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사업지연에 따른 주민들 피해보상은 못해줄 망정 보상비를 깎기 위해 자신들의 정당성만 내세우는 LH에 치가 떨립니다." (파주운정3지구 주민)

4년을 훌쩍 뛰어넘는 길고 긴 진흙탕 싸움의 끝이 보이나 싶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자신들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던 지긋지긋한 빚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어슴푸레 보였던 만큼 10월15일 토지보상비 통지서를 받아 쥔 주민들은 실망과 배신감이 교차하며 복받쳐 오르는 분노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지난 23일 파주운정3지구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찾은 머니위크 취재진은 때 이른 가을 바람이 제법 날카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비대위 사무실을 찾은 주민들과 마주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해준 토지보상비 산출내역을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넋 놓고 울었다는 주민 김순례씨(가명·53). 나이에 비해 주름이 깊게 팬 그는 기자들을 보자마자 A4용지에 빼곡히 적은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읽고 도와달라며 호소했다.

비닐하우스 채소를 재배한다는 김씨는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신도시개발을 위해 LH가 이주대책을 권고한 2008년만 하더라도 충분한 보상을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대토 대출금 이자는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보상비는 터무니없이 책정돼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김씨는 "도대체 감평(감정평가)의 기준을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다"면서 "똑같은 지번에 속한 대지의 감평 결과가 제각각"이라며 "4년 전 1억원을 호가했던 대지가 현재 다 합쳐도 4000만원이 채 안된다"고 토로했다.

보상비율 기준 0.5배…"말도 안된다"

현재 운정3지구 주민들에 대한 토지보상 산출비율을 살펴보면 당초 언론을 통해 나돌았던 2배 또는 2.5배는 전무한 상태. 반면 0.5배나 1배 보상이 대부분이며 최고수준은 1.4배에 불과하다.

LH의 이 같은 보상비 산출근거를 주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인근 운정1·2지구 보상수준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아 형평성을 크게 벗어났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박용수 운정3지구 비대위원장은 "운정1·2지구의 경우 3조2000억원대 보상비를 지급한 만큼 운정3지구 역시 동등한 보상이 이뤄져야 마땅하다"면서 "물가상승 및 주변환경 변화에 따른 현실적인 보상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LH는 그동안 운정3지구 용지보상비 수준을 앞서 지급된 운정1·2지구 기준에 맞출 것이라고 밝혀왔다"면서 "하지만 운정3지구의 보상수준은 1·2지구의 40%에도 못미치고 있다"고 성토했다.

운정3지구와 운정1·2지구 보상비가 뚜렷한 격차를 보이는 것은 감정평가 과정에서 개별공시지가를 기준치로 적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운정1·2지구 공시지가는 2.2배에서 2.5배 수준이었지만 현재 운정3지구의 공시지가는 1.2배로 운정1·2지구의 절반수준도 안된다. 이 같은 기형적 공시지가 현상은 운정1·2지구 보상이 수립되던 2008년 당시의 공시지가 수준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LH의 설명이다.

여기에 운정3지구는 50% 이상이 농지로 적용돼 LH가 이 지역 농지의 공시지가를 현재 기준이 아닌 2008년 기준으로 적용, 보상비를 낮춰 책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주민 부채 1조2000억…'원주민 푸어' 속출

서민주거안정과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신도시 개발에 따라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키로 하며 적절한 이주보상을 약속했던 LH의 말만 믿고 대출에 나섰던 운정3지구 주민들은 현재 1조2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평생 논밭을 일구거나 공장을 운영했던 운정3지구 주민들이 1조2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된 것은 2007년 운정3지구가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당시 LH는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 ▲목동리 ▲와동 ▲당하리 ▲교하 일대 주민 소유의 지장물 조사 및 주민이주를 위한 토지보상안 마련에 착수했다.

LH는 국토해양부로부터 파주운정3지구 개발계획을 승인받음과 동시에 운정3지구에 편입된 지장물건인 ▲가옥 469가구 ▲상가 296실 ▲영업권 721개 ▲공장 454곳 ▲창고 337개 ▲비닐하우스 490개 ▲기타 145개 등 총 2852호에 달하는 지장물 조사를 착수하고 이주대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대토'를 위해 금융권 대출 신청에 나서는 등 운정3지구 이주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부동산경기가 극심한 하향세로 돌아섰고 여기에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통합 이후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던 LH가 운정3지구의 사업타당성을 거론하며 개발사업을 보류하면서 대토 구입을 위해 대출에 나섰던 주민들은 고스란히 빚더미를 안게 됐다.

비대위 관계자는 "운정3지구 주민 그 누구도 이곳에 개발사업을 수용해달라고 LH에 요구한 적이 없다"면서 "LH가 토지보상을 약속하며 이주할 것을 종용하는 공문만 보내지 않았어도 작금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평가 없는 토지수용 불가"…정치쟁점 조짐

운정3지구 주민들은 수용재결을 통한 정당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LH가 제시한 현재의 감평결과는 절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정한 재평가만이 주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이 같은 요구를 LH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토지수용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으며 이마저도 묵살될 경우 정치권을 상대로 운정3지구의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용수 비대위원장은 "정치권을 이용하자는 게 아니라 이 문제를 정치에 반영하자는 뜻에서 대선후보인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공정한 토지보상이 수립될 수 있도록 요구할 것"이라며 "박근혜 후보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사를 찾아 릴레이 시위에 나설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LH, "보상기준 문제없다"

토지보상비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사업주체인 LH는 운정3지구 토지보상은 감정평가 기준에 따른 공정한 산출이라며 적법성을 강조했다. 운정3지구 주민들에게 지급된 보상비 수준이 만족스러운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만족스럽다"고 답하기도 했다.

LH파주사업단 토지보상 관계자는 "주민들 대다수가 토지보상에 불만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 불만세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 "만일 주민들이 재평가를 원한다면 이의신청을 통해 재평가를 실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LH측은 현재 지급된 보상금액 수준이 운정1·2지구에 지급됐던 3조2000억원의 근사치인 2조9000억원인 만큼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당초 기대했던 보상비율이 최저치를 기록한 것과 관련 LH는 "개별공시지가는 개발이익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특히 임야를 대지로 불법 변경하는 경우 변경된 토지의 50~70%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LH파주사업단 보상 창구에는 토지보상금을 수령하기 위해 방문한 주민들과 상이한 보상기준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토지보상금 수령을 위해 방문했다는 한 주민은 "당장 눈앞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출금 상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보상비를 받으러 왔다"면서 "서민들을 위한 공기업이 오히려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다"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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